[강준영 칼럼] 한·미 정상회담이 남긴 것

2019-04-14 11:20
  • 글자크기 설정
 

[강준영 교수]



한반도 핵 문제가 또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하노이 회담의 결렬로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북 간의 핵협상을 견인하고, 한·미 동맹을 공고화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다. 특히 북핵 협상과 관련해 한국의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강조하면서 ‘포괄적 비핵화 타결’과 ‘단계적 제재 완화’라는 중재안을 제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3차 미·북 정상회담은 언제나 가능하다면서 북한과의 협상 동력 유지를 분명히 한 것은 다행이다.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의제 조율이 쉽지 않음이 이미 알려졌었고, 공동기자회견이나 언론 발표문도 없어서 양국 정상의 대화 수준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 정부의 북핵 인식과 방식으로는 미국을 설득하기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줬다. 때마침 북한에서는 최고인민회의가 열렸고 지도자로 재추대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놀랍게도 한국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고 민족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면서 한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남한이 외세 의존에서 탈피해 모든 것을 남북 관계에 종속시켜 북한과 협력해야 함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더불어 미국에도 연말까지 시간을 두고 미국의 정책에 변화가 있다면 한 번 더 트럼프와 정상 회담을 할 용의가 있음을 강조해 협상의 불씨는 살려뒀다.

이 대목에서 가장 난감한 것은 한국 정부다. 결국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촉진자나 중재자가 될 수 없음을 통보받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어렵게 조성한 협상국면을 유지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급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괴롭히던 국내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고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 등이 당장은 급하다. 이 상황에서 북한에게 결과가 불확실한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하노이 회담 결렬로 질책을 받았지만 지금은 ‘잘못된 협상의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분명한 미국의 요구를 전달한 데 대한 긍정적 분위기도 커졌다. 미 의회나 전문가들은 한국은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닌 미국의 동맹이라면서, 미국과의 협력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는 자력갱생 노선을 다시 꺼내들고 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 한국 정부의 실천적 행동을 강조하고 나섰다. 결국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북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대북 협상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미·북 협상 진척의 전제인 ‘포괄적 완전한 비핵화 협의’는 원초적 인식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양국이 동의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4.27 남북 판문점 선언과 6·12 미·북 싱가포르 공동성명, 9·19 남북 평양선언은 모두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다. 한국정부는 이를 근거로 적극적인 경협 추진과 관계개선이 비핵화의 추동요인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미국과 북한은 첫 단추조차도 못 끼웠다.

상황이 이런데 또 추상적인 ‘포괄적 비핵 합의’를 가지고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애초부터 북한은 영변 핵시설 이상 내줄 생각이 없었고, 미국은 북한의 모든 핵과 시설·원료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비핵화 초기 단계 카드는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리비아가 그랬듯 북한의 기존 핵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등 비핵화 조항에 합의하고 이를 완전히 이행하는 시점에서 제재를 완화한다는 것이 미국이 북한에 던진 안이다. 아직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핵은 비핵화 본질을 꺼내면 원점으로 회귀한다.

결국 북핵 문제의 해결은 ‘완전한 비핵화’의 범위의 인식차를 줄이고, 미·북이 합의한 후속 조치들이 담보되지 않으면 해결이 무망하다. 일단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평화분위기를 정착시키려는 한국 정부는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검증하지 않으면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트럼프 정부와, 미국과 연말까지 지켜보겠다는 북한판 전략적 인내를 들고 나온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서 고민이다. 그럼에도 중재를 하려면 우선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내놓아야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음을 북한에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실제로는 매우 연연하는 제재도 포괄적 합의가 되면 당연히 완화되고 해제되는 것이며, 단계적 비핵화를 위한 스몰딜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설득이 더 중요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