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국민통합

2019-04-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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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을 윈스턴 처칠이 했든 단재 신채호가 했든 중요치 않다. 함의에 주목하는 게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할 일이다. 역사는 현재를 관통하는 동력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밑바탕이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현재도 미래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망각을 이길 때 힘을 얻는다.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0년 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민주공화제를 내걸고 닻을 올렸다. 당시 임시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로 시작한다. 봉건 제국주의에서 시민이 주인이 된 나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임시정부 수립까지는 산고(産苦)가 심했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 외국의 행정·사법권을 인정한 지역)에 망명객 29명이 모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초를 놓았다. 임시의정원 기록은 “4월 10일 저녁 10시에 개회하여 4월 11일 오전 10시에 폐회했다”고 썼다. 밤을 새워 회의를 했다는 뜻이다. 격론 끝에 명칭은 ‘임시의정원’,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초대 의장은 이동녕이다. 국회의사당 본관에 이동녕 흉상이 서 있는 이유다. ‘민주공화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뿌리가 됐다. 우리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잇고 있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동안 진영에 따라 논쟁을 거듭했다. 진보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보수는 1948년 정부 수립을 주장해 왔다. 앞선 역사적 사실과 헌법 정신을 감안하면 1919년 4월 11일이 타당하다. 독립운동 무대는 중국이었다. 상하이에서 시작한 임시정부는 항저우, 난징, 우한, 창사, 광저우, 류저우를 거쳐 충칭에서 막을 내렸다. 행로를 따라가면 고단했던 임시정부 27년 행적(1919년 4월~1945녀 8월)이 보인다. 엄혹한 시절, 임시정부는 조국 독립을 위한 최후 보루였다. 망명객들은 독립된 나라를 염원하며 기꺼이 목숨을 던졌다.

김구, 김규식, 신익희, 신채호, 안창호, 여운형, 이동휘, 이동녕, 이회영, 이시영, 이승만, 조소앙, 조성환을 비롯한 지사들과 윤봉길, 이봉창, 김원봉 같은 의사들까지 투쟁을 이어갔다. 임시정부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연해주, 미주, 쿠바, 멕시코 유카탄 반도까지 망라한다. 세계사적으로 이처럼 가열차고, 광범위한 독립운동 역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빛나는 독립투쟁 역사가 있고 숭고한 선열들이 있음은 충분히 자랑스럽다.

누구라도 임시정부 청사에 들르면 1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가슴이 뜨겁다. 상하이는 한층 더하다. 임시정부 출발지이자 윤봉길 의사가 의거한 곳이기 때문이다. 윤 의사가 의거했던 루쉰(옛 훙커우‧虹口) 공원에는 매헌정(梅軒亭)이 있다. 이곳에서는 두 가지가 눈길을 붙잡는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손에는 폭탄,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는 윤 의사 사진이다. 강렬한 눈빛, 단정하게 쓸어올린 이마, 담담한 표정은 결의에 차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 망명길에 오르며 쓴 글이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뜻을 이루기 전까지 살아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긴 글이다. 윤 의사 의거는 임시정부를 제대로 부각시켰다.

오늘 여의도공원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기념해 19시 19분에 행사가 열린다. 임시정부 의미를 새기고,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정부는 2021년 완공 예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도 건립 중이다. 기념관은 서대문형무소 인근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들어선다. 늦었지만 천안 독립기념관과 함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 역사를 기리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100년이 되도록 기념관 하나 갖지 못했다. 국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미국은 뉴욕 허드슨 강 리버티 섬에 ‘자유의 여신상’을 세워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혁명 100돌을 기념하는 ‘에펠 타워’를 세웠다. 임시정부 기념관은 진영을 떠나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여야 5당 원내지도부가 모처럼 의기투합했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여야 5당 원내지도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중국 상하이 일정에 동행했다. 협치에 이르는 계기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선열들이 피 흘려 되찾은 독립된 조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들이 생각하는 조국과 상대가 추구하는 조국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할 때다. 차이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에 나선다면 다행한 일이다. 그럴 때 지난 100년이 새로운 100년을 지탱한다. 어느 때보다 역사와 대화가 절실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새기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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