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불황 닥치니 다시 손짓하는 中…韓기업 "재공략 호기"

2019-04-0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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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성, 예산 들여 투자유치·합작모색 나서

무역전쟁에 경제악화, 각지서 韓기업 모시기

"사드 갈등에서 포기 못하는 시장" 한목소리

'한국산 통한다' 자만 말아야, 정부 지원 시급

지난 8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허난성 정부와 중국한국인회 주최로 열린 '한·중 청년기업가 포럼' 현장.[사진=이재호 기자 ]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불황과 외자 유출에 시달리는 중국이 한국 기업을 향해 다시 구애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특히 경제 발전 수준이 낮고 외부 투자 유치가 시급한 중국 내륙 지방정부들의 한국 기업 모시기 행보가 꽤나 적극적이다.
한국 기업가들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이후 잃었던 기반을 되찾고 중국 시장 재공략에 나설 호기라고 입을 모은다. 한·중 경제협력의 제2막이 시작될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中 지방정부 "우리 지역으로 오세요"

최근 중국 중부 내륙의 핵심 도시인 허난성 정저우(鄭州)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 온 한·중 양국의 기업가들로 북적였다.

지난 7일에는 중국한국상회와 정저우 인근의 자오쭤(焦作)시가 한·중 산업단지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태극권의 발원지 정도로만 알려진 자오줘는 외자 유치를 통한 산업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다.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유치를 위해 중국한국인회와 손을 맞잡았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화샤(華夏)그룹은 산업단지에 입주하는 한국 기업에 저렴한 사무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새 오피스 빌딩을 짓기로 했다.

자오줘시 관계자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업종을 제한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튿날인 8일에는 한·중 양국에서 각각 50명씩, 총 100명이 참석한 '청년기업가 포럼'이 개최됐다. 행사를 주최한 중국한국인회의 박원우 회장은 "젊은 기업가들이 한국 시장에 얽매이지 말고 광활한 중국 내수를 기반으로 새로운 상품·서비스 개발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한국인회는 산둥성과도 비슷한 행사 개최를 논의 중이다. 박 회장은 "내년부터 중국 각 성을 돌면서 한·중 젊은 기업가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허난성은 이번 행사를 치르는 데 소요된 비용 320만 위안(약 5억4000만원) 중 280만 위안을 부담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또 9일부터 직접 국제무역박람회를 개최하며 대외 개방 의지를 피력했다. 허난성 권력서열 1~2위인 왕궈성(王國生) 당서기와 천룬얼(陳潤兒) 성장이 총출동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왕신웨이(王新衛) 정저우 시장도 이달 중 한국으로 날아가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허난성뿐 아니다. 지난 4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광둥성 발전포럼에는 마싱루이(馬興瑞) 광둥성 성장이 직접 참석했다. 이 포럼에 성장급이 참석한 것은 사드 갈등이 터진 이후 처음이다.

앞서 코트라가 주최한 한국·산둥성 협력 세미나에 참석한 궁정(龔正) 산둥성 성장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산둥성의 제조업 기반 및 물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중 청년기업가 포럼'에 참석한 한국의 젊은 기업가들이 중국시장 진출 의지를 다지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


◆뻣뻣하던 中 관료가 먼저 연락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전년보다 0.5%포인트 가량 낮은 '6~6.5%'로 제시하며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걸 인정했다.

경영 일선의 기업가들도 팍팍해진 현실을 토로한다. 중국의 한 대형 백색가전 기업은 매출 감소로 협력업체에 건네는 어음 만기를 2배로 늘렸다. 돈이 안 돈다는 얘기다.

한 PC 제조사는 무역전쟁 때문에 미국으로 향하는 수출 물량이 대폭 감소해 울상이다. 위험은 부품 공급사 등 중소기업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광둥성의 한 컨설팅 업체 대표는 "광저우(廣州)의 경우 제비집 수프 메뉴로 상징되는 고급 음식점이 거의 없어졌다"며 "홍콩에서 넘어오는 따이고우(代購·보따리상)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불황의 그늘이 짙어진 게 한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 유치에 사활을 걸게 된 배경이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한국 기업가들은 "성 정부의 상무청, 시 정부의 상무국 관료들이 한국 기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재작년까지는 면담 요청을 해도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요즘에는 먼저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상황이 개선되자 중국 재공략에 나서는 한국 기업도 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협력사로 광둥성에 들어왔던 한 기업은 PC 케이스 제조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중국에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닛산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중소기업은 닛산 중국법인이 있는 정저우에 첫 해외 공장을 짓기로 했다.

채규전 산둥한국인회 회장은 "중국에 불황이 닥친 게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사드 갈등의 여파도 잦아든 만큼 더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과신은 금물

정저우 청년기업가 포럼에서 만난 한국의 젊은 기업가들은 "중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각오로 부딪혀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스크팩 등을 생산하는 티제이코퍼레이션의 이용석 대표는 "사드 이후 중국 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생긴 게 사실이지만 워낙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신 포도라고 지레짐작하고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에서 여행 플랫폼 론칭을 준비 중인 후쿠컴퍼니의 이동근 대표는 "정보기술(IT) 분야의 경우 중국 진출 시 제약이 많아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한국 내 인증이 중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산은 무조건 중국에서 통할 것이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현지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소비재 무역업을 하는 언블트레이딩의 이재우 부사장은 "중국 시장의 트렌드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며 "현지 업체를 발굴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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