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른바 상대를 먹이는(?) 노승혜는 강력한 '한 방'을 가진 여자다.
육군참모총장에 여당 국회의원까지 지낸 아버지 밑에서 숨도 못 쉬고 산 그는 아버지의 원대로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생인 차민혁과 결혼하는 그야말로 '순종적' 삶을 살아왔다. 남편의 욕망에 떠밀려 아이들 입시 뒷바라지에 열심히인 승혜는 도는 넘어서는 남편의 행동에 결국 '행동'하고 '변화'하는 인물이다.
단순히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순응하는 '여성상'을 표현하는 인물이었다면 배우 윤세아를 캐스팅할 일도 없었을 일. "분명 강력한 한방을 숨기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예언처럼, 노승혜는 '가부장적'인 남편을 일갈하고 그를 바꾸어놓으며 '빛승혜' '갓승혜'라 찬양받기에 이른다.
최근 아주경제는 JTBC 드라마 'SKY 캐슬' 종영 후 주연배우인 윤세아와 만나 드라마에 관한 이모저모를 나눌 수 있었다.
"제가 뒤통수를 칠 거 같은 느낌이 있나 봐요. 하하하. 방송 초반부터 '노승혜가 이상하다' '노승혜가 범인 아니야?'하고 의심을 받았다니까요! 저조차도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참 재밌는 경험이었죠."
허투루 넘어갈 수 없는 완벽한 '캐스팅'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방영 내내 '캐슬 퀸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었다. 윤세아는 "조현탁 PD님의 세련된 연출 기법 덕에 가능했다"며 조 PD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캐슬 엄마들이 대화하는 장면은 정말 뭐가 있는 거 같잖아요. 사실 연기할 땐 어떻게 나오는지 몰라서 그냥 편안하게 연기했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입만 따로 클로즈업하고, 손만 따로 클로즈업하는 등 눈빛, 손짓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고 의심스럽게 연출하셨더라고요. 허투루 쉽게 넘어가지 않았었던 거 같아요. 그 덕에 드라마가 더 재밌고 긴장감 넘치게 나왔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유리에 굴곡되는 인물들의 얼굴이었어요. 굴곡에 따라 그 인물의 속내가 진짠지, 가짜인지 파악하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 중 하나였죠!"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아주 많은 것을 일러주고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극이 진행되며 갈피를 잡는 경우들이 있다. 윤세아는 "촬영 전에는 승혜의 설정 정도만 알고 있었다"며 간략한 승혜의 설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승혜는 억압된 환경에서 자라왔고 곧 터질 거 같은 상태라는 걸 알고 시작했어요. '가슴에 불덩이가 있다'는 게 승혜를 설명하는 주요 문장이었죠. 그 호흡을 조절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꾹꾹 누르고 있되 삐질 흐르는 감각이라고 할까요? 드라마를 본 친구들은 '넌 가만히 앉아서 뭐 하는 거야?'라고 하는 데 아녜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야! 하하하. 백조처럼 수면(水面) 아래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어요. 그런 긴장감, 텐션을 유지하는 게 제 몫이었어요."
다른 '캐슬 퀸'과 마찬가지로 윤세아 역시 드라마 첫방송 이후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되었다"고. 드라마의 방향성과 그가 해야 할 몫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바로 드라마의 포문을 열었던 김정란의 열연 때문이었다.
1, 2회 방송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어요.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되더라고요. 매 작품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하고 준비도 하고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그 깊이에 압도되어서 '열심히 말고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가 많이 됐어요."
극 중 노승혜와 남편 차민혁(김병철 분)은 블랙 코미디부터 서스펜스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두루 받아왔다. 윤세아는 모든 공을 김병철에게 돌리며 "잘 맞춰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칭찬했다.
"초반에 (김)병철 오빠가 카리스마 있게 잘 눌러서 표현해줬어요. 전 리액션만 잘하면 됐죠. 언제 '반전' 포인트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캐릭터 성향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흐름만 잘 조절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가장 많은 화제를 모았던 건 이른바 '아갈대첩'이라 불리는 원테이블 신. 혜나(김보라 분)의 죽음을 두고 캐슬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의심하고 다투는 장면이다. '교양'과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이들이 욕지거리하고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안기기도.
"우리끼리 '여기서 시청률 오르겠다'고 했었어요. 하하하. 대본으로 어느 정도 표현되어있었지만 우리끼리 리액션으로 만들어간 장면이기도 했죠. 카메라는 계속 돌고 다들 (카메라에) 걸리다 보니까 방심할 틈 없이 계속해서 연기해야 했거든요."
'SKY 캐슬' 열혈 시청자들이 주목한 건 승혜의 리액션이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승혜와 병철이었지만 자식들이 모함을 받자 뜻을 모아 서진(염정아 분)과 준상(정준호 분)에게 맞서는 모습. 특히 병철이 준상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자 승혜가 '멋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카메라에 잡히며 시청자들을 폭소케 만들기도 했다.
"저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 줄 몰랐어요! 하하하. 그 장면을 찍으면서 '아, 이래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머리 박고, 코피를 터트리는데 왜 이렇게 멋있는 거야. 제가 (김병철) 오빠를 딱 쳐다봤는데, 오빠도 막 우쭐대고 있는 거예요. 하하하. 서로 말하지 않았는데 그런 액션과 리액션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게 부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커플들만의 디테일이 더 있었을까? 워낙 '찰떡호흡'을 자랑하는 '캐슬 커플들'이었기에 배우들의 커플 호흡이 더 궁금해졌다.
"우린 '커플 호흡'이랄 것도 없었어요. 시선이 어긋나야 하는 부부니까! 하하하.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 '뭐야, 왜 쳐다봐!' 이러면서 외면하는 거예요."
드라마를 찍으면서 "엄마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윤세아. "아이들이 컸을 때 어떤 상실감을 들지 마음으로 와닿았다"는 그에게 화제를 모았던 '이태원신'에 관해 추가로 물었다.
큰딸 세리가 하버드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승혜가 이태원 밤거리를 헤매며 딸을 찾아 헤매고 울부짖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고 다음 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큰 반응을 끌어오기도 했다.
"대본을 볼 때부터 울컥하더라고요. 저의 어린 시절도 생각나고, 엄마도 떠오르고요. 우리 집은 화목했지만 엄격했기 때문에 제가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거셌어요. 수학 학원에 보내고 싶은 아버지와 댄스 학원을 다니는 딸 사이에서 엄마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스케일은 다르지만 승혜처럼 저를 찾아 다니시기도 하고. 어릴 땐 엄마가 저만 보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런 모습들이 싫었어요.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 부담스럽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고 마음이 무거웠어요. 엄마가 제게 '꼭 너 같은 딸 낳아봐' 했는데 세리를 낳았죠. 하하하. 이제라도 알게 돼 얼마나 다행이에요. 고마워, 고마워 말만 하지 이렇게 깊게 느껴 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승혜 전, '승혜의 마음'을 알 수 있기까지는 배우 염정아의 도움이 컸다고. '미혼'인 윤세아는 평소 절친하게 지내온 염정아를 보며 '엄마' 승혜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고 설명했다.
"(염)정아 언니랑 평소에도 되게 친하게 지내거든요. 몇 년간 속내를 털어놓고 지낼 정도로 가깝게 지내왔는데 항상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어요. 그러다 'SKY 캐슬'에서 만나게 되었고 출연 결정이 된 후에야 캐릭터며 고민거리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언니가 엄마로서의 걱정거리 등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해줬고 저도 언니의 육아 등을 보고 지냈으니 이해가 빨리 됐어요. 언니가 아이들을 대하고 장난을 칠 때 등등 풀어진 표정이 있는데 그런 게 되게 재밌거든요. 인간미 느껴지는 모습이 있는데 그런 게 승혜에게 제일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정아 언니의 모습들이요."
어느덧 데뷔 15년 차.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활약해왔지만 'SKY캐슬'만큼 격렬한 인기는 처음이라는 그는 "이름이 아닌 캐릭터로 불리는 재미가 있다"며 요즘 생활에 관해 운을 뗐다.
"이런 건 또 처음이에요. 밖에 나가면 '세리 엄마' '쌍둥이 엄마' '노승혜'라고 불리는데 신기해요.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승혜를 찾고 계시기도 하고, 솔직히 그 안에 조금 더 살고 싶어요."
'SKY 캐슬'의 인기는 23.8%(닐슨코리아 전국기준)라는 최고 시청률로, 수많은 패러디 영상 등으로 영향력을 입증했다. 윤세아 역시 '패러디 영상'을 알고 있다며 "초반에는 제 흉내를 안 내서 서운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패러디도 왜 이렇게 잘하고, 왜 이렇게 웃긴지. 초반에 제 흉내를 안 내줘서 서운했는데 요즘에는 또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죠."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윤세아의 차기작은 무엇일까? 그는 "아직 계획된 게 없다"며 "주어지는 작품을 또 재밌게, 열심히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센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 다들 '역할에서 못 빠져나오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는데 저는 성격이 천진난만해서 잘 나와요. (작품을) 오가는 연습이 잘 됐어요. 또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작품도 만나고. 살던 대로 열심히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