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10일 5박8일 일정의 미국 순방길에 올랐다. 지난해 7월 국회의장 취임 이후 첫 ‘4강(强) 외교국’ 방문이다.
대한민국 공식 의전서열 2위이자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4강 외교국을 순서대로 찾는 것은 의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방미(訪美)의 무게감과 중요성은 남다르다는 평가다.
오는 17일까지 예정된 미국 방문에서 문 의장을 비롯한 국회 대표단은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미 의회 주요 인사들과 만나 한·미동맹 가치에 대한 양국 의회 차원의 지지를 재확인할 계획이다.
◆이해찬·정동영 등 여야 5당 지도부 총출동…‘매머드급’ 대표단 구성
이번 미국 순방은 의회 지도부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가동되는 첫 대미(對美) 외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순방 대표단도 이에 걸맞게 ‘매머드급’으로 구성됐다. 우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정동영 민주평화당·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 여야 5당 지도부가 총출동한다.
또한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이수혁(민주당)·김재경(한국당)·정병국(바른미래당) 의원 등 여야 간사를 비롯해 진영(민주당)·백승주(한국당)·박주현(평화당)·김종대(정의당) 의원 등 각 정당 대미외교 전문가로 꼽히는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다.
대표단은 미국 워싱턴D.C.를 시작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을 돌며 북·미회담 성과 도출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14일에는 홍진 임시의정원 의장 유족(손자며느리)인 홍창휴 여사와 오찬을 함께하며, 임시의정원 100주년을 기념해 추진되는 홍진 의장 흉상 건립사업 추진 경과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문 의장은 국회대표단 방미 목적에 관해 “새롭게 구성된 미국 의회 지도부에 남북·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며 “2차 북·미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더 큰 진전과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양국의 의회 대 의회 간 허심탄회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당 독자행보 우려…여야 대치 국면 속 ‘문희상 역할론’ 주목
정치권 기대가 큰 만큼 이번 순방에 대한 부담과 우려도 존재한다.
한국당은 12일로 예정된 펠로시 하원의장과 엘리어트 엥겔 하원 외무위원장, 케빈 맥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제임스 이노프 상원 군사위원장 등과의 연쇄 면담 이후 13일부터 독자행보에 나선다.
구체적인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당 측은 미국 조야(朝野) 인사들에게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과 관련한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대표단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경우 전례 없는 초당적 방미 대표단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여야 지도부가 일제히 대표단에 참여함에 따라 1월에 이어 2월 임시국회가 불투명해진 것도 부담이다.
게다가 북·미회담 날짜를 피하기 위해 연기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당 전당대회가 27일로 예정돼 있어 국회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순방으로 인해 2주 남짓 남은 2월 임시국회 회기를 정상 가동하려면 순방 기간 중에 지도부 간 논의가 있어야 된다. 국회 내 대표적인 의회주의자인 문 의장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문 의장은 빡빡한 방미 일정 중에 시간을 쪼개 여야 지도부들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문 의장 본인도 현재 국회 모습이 부끄럽고, 비정상적이라고 바라보고 있는 만큼 올바른 의회상을 복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