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가 잇따른 성폭력 사건으로 충격에 빠졌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었던 선수들의 피눈물 때문이다. 여성의 인권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고통의 외침이었다. 자리 보존에 급급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들리는가. 이 회장은 고개를 숙인 채 귀는 닫았다.
최근 쇼트트랙과 유도 등에서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면서 대한체육회에 대한 책임론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수장이자 체육계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할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같은 날 이사회에는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등 체육·시민사회 단체들이 찾아가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국회에서도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림픽에서 감동을 선사했던 딸 같은 선수들이 지옥 같은 고교 시절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안 국민들의 분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교육의 산실이 돼야 할 태릉선수촌과 학교에서 꿈을 키우게 해야 할 지도자들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끔찍하다.
이들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 동안 이 회장은 어디서 무얼 했나. 예방은커녕 이들의 아픔을 알지도 못했다. 방관과 방조로 고통을 키웠다. 수년째 해묵은 예방 시스템을 내놓고는 실행도 못했다.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10년 전 발표한 대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방책에 불과했다.
대한체육회는 이달 초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자료’를 발표하고 근거 없는 체육계 성폭력 감소를 홍보하는 엇박자를 냈다. 이 회장은 임기 초부터 보은 인사로 구설수에 올랐고, 선수촌 탈의실 몰카 사건 때도 미온적 대응을 하는 한편 성폭력 지도자에 대한 면죄부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의례적으로 고개를 숙일 뿐 책임론에 대해선 굳게 입을 닫았다.
이 회장은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자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이 회장은 상처 받은 선수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도없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안도 내놓지 못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처사다. 또 한 번 지독한 미세먼지가 걷히길 기다리는 것처럼 슬며시 뒤로 숨었다.
이 회장은 체육계 수장 자격이 없다. 국민의 신뢰도 잃었다.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한국 체육계의 썩은 병폐를 닦는 시작이자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첫 걸음이다.
이 회장에게 묻고 싶다. 용기를 낸 심석희와 신유용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이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0년 9월 3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