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59, Jim Yong Kim)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 7일 (현지시간) 임기를 3년 5개월이나 남기고 사임을 발표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화설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최대 주주인 미국은 차기 총재 임명의 키를 쥐고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기구 수장 선출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미국이 지명한 후보가 반드시 차기 총재에 오른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세계은행 뿐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등 국제기구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며 여러 차례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국제 협력과 자유 무역을 주창하던 미국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국제기구와 제도가 이젠 그들에게 불이익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용 총재 후임자로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세계은행을 이용해 미국과 패권 경쟁에 돌입한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과 지적 소유권 침해 고발 등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를 내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압력에 지난해 세계은행의 對중국 대출은 30% 가까이 줄었다.
차기 총재 선임의 최종 결정은 189개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된 세계은행 이사회의 몫이다. 만약 총재 지명권을 가진 트럼프가 대중 강경파 인물을 선택한다면 미.중 갈등에 새로운 변수가 생기고 회원국들의 우려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보호 무역주의 확산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신흥국들의 반발이 거세지면 임명은 불발 될 수 있다.
이미 지난 2012년 한국계 미국인인 김용 총재가 선출될 당시부터 미국이 총재 임명권을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 시키려는 의도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김용 총재는 개도국들이 내세운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및 콜롬비아 출신 교수와 경선을 벌인 바 있다. 미국이 지명한 후보자가 경쟁을 거친 건 세계은행 역사상 이 때가 처음이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준비은행 총재는 “국제기구들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면 세계은행과 IMF 총재직을 미국과 유럽이 손에 쥐고 내놓지 않는 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번에는 여러 사안들 탓에 회원국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지명한 총재 후보자를 지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김 총재의 사임으로 세계은행 수장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분열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라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한 후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다수의 회원국들과 미국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표면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였던 김용 총재의 중도 사퇴에 대해
각종 추측만 무성하다. 그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석탄 전력 투자액을 크게 줄이는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마찰을 빚은 게 아니냐는 애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 총재는 다음 달 1일 세계 각지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민간 투자사인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GIP)’로 옮긴다. 그의 퇴진 후 불가리아 출신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CEO)가 임시로 총재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고 세계은행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