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유통 명가’로 불린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롯데 껌’을 성공시키면서 자본을 축적한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롯데그룹을 일으킨 성공스토리는 ‘롯데맨(롯데 임직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신 명예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 회장은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서 조용하면서도 다부지게 경영수업을 해온 인물이다.
1955년 2월14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한 신동빈 회장은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뒤,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신 회장은 이후 1988년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입사한 뒤,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임명되면서 한국 재계에 공식적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이후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2004년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2011년 2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2세대 오너로서 착실히 입지를 다져온 신 회장은 2015년 1월 친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린 2년여간의 경영권 다툼 끝에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승리하면서 그룹의 지배력은 공고해졌지만, 신 회장 또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된다.
롯데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그간 신 전 부회장이 제동을 걸면서 분란을 일으킨 데다,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는 일본 기업’ ‘거미줄 같은 순환출자 고리’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닌 것이다.
그 와중에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특허권이 날아가고 2017년 2월에는 사드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 정부의 ‘롯데 불매운동’까지 겹쳐 면세사업은 한층 위기를 맞게 된다.
가장 큰 위기는 2016년 신동빈 회장과 롯데 총수 일가 모두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다. 4개월간 검찰의 압수수색, 신 회장에 대한 불구속기소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전 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동빈 회장은 두번이나 그의 빈소를 찾는 등 당시 애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 신 회장은 그해 10월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검찰수사로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고 지주사 설립·순환출자 해소 등 경영혁신안을 발표, ‘뉴롯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엔 신 회장이 또다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되는 악재가 이어졌다. 그룹 횡령배임과 배임혐의는 2017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으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는 2018년 2월,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돼 신 회장이 법정구속되고 말았다.
롯데는 갑작스런 오너 구속에 당황하면서도, 황각규 부회장 중심의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했다. 이후 약 8개월 가까이 회장이 없는 ‘총수 부재’ 상황이 이어졌다. 이 기간 롯데는 10조원이 넘는 대규모 해외투자와 호텔롯데 상장 등 지배구조 차질을 빚었고 인재 채용도 올스톱 됐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