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분쟁지역을 찾은 것은 지난해 1월 취임 후 처음이다. 이번 방문은 시리아 철군 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퇴,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 훼손 우려, 멕시코 장벽 갈등에 따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등 ‘트럼프발 대혼돈’이 미국을 덮친 가운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국면 전환용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에서도 사흘째 방위비 분담금을 언급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집권 하반기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에 위치한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장병들 앞에서 연단에 올라 자신의 시리아 철군과 아프가니스탄 병력 축소 방침을 옹호하며 경제·무역을 넘어 외교·안보에까지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방위비 분담금 압박은 사흘째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 것은 불공정하다. 보호해달라면서 우리를 이용하고 우리의 위대한 군을 이용하는 나라에 더 이상은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에 대한 돈을 내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도 이틀 연속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부자 나라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19일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발해 매티스 국장방관과 IS 격퇴를 담당하던 브렛 맥거트 대통령 특사가 줄줄이 사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을 문제 삼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를 선명히 하면서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적극적 개입을 통해 패권을 확장하던 지금까지의 미국 대외 정책의 전통을 깨고 비용에 기초한 실리를 더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AF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 방문에서 미국이 전후 70년 동안 이어오던 ‘세계 경찰’ 역할의 종식을 선언했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내달로 예정된 한미 분담금 협상을 포함해 미국이 동맹국에 방위비 인상 요구를 강화하고 다른 지역에서 미군의 추가 철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는 계획에 없다고 밝혔다.
주요 외신들은 이라크 방문이 이뤄진 시점에 주목하면서 그 목적이 국면 전환용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시리아 철군 후폭풍, 셧다운 장기화 우려, 증시 폭락 등 국내 혼란에 쏠린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국 혼란 속에서 “긍정적인 헤드라인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격변의 한 주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장병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는 등 친근한 행보를 강조한 이라크 방문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멜라니아와 나는 이라크 알아사드 공군기지의 위대한 장병들을 방문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미국에 행운이 깃들길!”이라고 적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위터에 현지 미군 장벽들이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연단에 오르자 커다란 박수와 환호성으로 맞이하면서 "USA!"를 연호하는 영상을 올렸다.
다만 일주일 간의 ‘정국 한파’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위기를 ‘미국 우선주의’로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갈등도 여전히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22일 0시를 기점으로 연방정부는 셧다운에 돌입했으나 닷새째인 26일까지도 합의는 난망하다.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순찰대에 잡혀 구금돼있던 과테말라 출신 8살 소년이 성탄 전야에 숨졌다는 소식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를 받쳐왔던 증시와 경제도 불확실하다. 뉴욕증시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역대 최장기간 랠리를 끝낼 태세이며 경제 둔화 우려도 커졌다. 시장 불안의 원인인 미중 무역전쟁이나 연준의 독립성 위협, 제롬 파월 의장의 해임설, 시장 진정을 위해 섣부르게 대처한 스티븐 므누신 장관의 해임설까지 악재가 모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만 26일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5% 안팎으로 급반등하면서 희망을 빛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