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0시 셧다운이 시작된 뒤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시 모여 협상을 벌였으나 또다시 합의가 불발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장기화를 불사하고 국경장벽 예산을 밀어붙인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25일까지는 주말과 크리스마스 연휴라 큰 피해가 없겠지만, 셧다운이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22일 토요일로는 이례적으로 본회의를 열었으나 협상이 표류하면서 3시간여 만에 휴회를 선언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이 이날 의회를 찾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셧다운을 끝내기 위한 합의를 모색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셧다운 사태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넘어 장기화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멕시코 장벽 예산에서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장기화를 불사하고 50억 달러 규모의 멕시코 장벽 예산을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백악관에서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주도하는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과 오찬을 가졌다. 트위터에는 “남부 국경에서 불법 활동의 위기는 현실이며 위대한 장벽을 세울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보내려던 연말연시 휴가 일정을 취소하고 워싱턴DC에 남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국경장벽 예산은 절대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국경 안보 예산으로 13억 달러는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장벽 건설에 사용돼선 안 된다는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머 대표는 22일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은 “오늘뿐 아니라 다음주도, 내년에도 절대 상원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이어 “만약 대통령이 정부의 셧다운을 끝내고 싶다면 장벽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상원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정책에 납세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셧다운은 22일 0시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전체 210만 명의 연방 공무원 가운데 80만 명이 셧다운의 영향을 받는다. 15개 정부부처 중 국무부, 법무부, 국토안보부를 포함한 9개 부처와 10여 곳의 기관 소속 38만 명의 공무원은 무급 휴직 상태에 들어가고, 국방·치안이나 우편, 항공 등 국민의 생명과 치안에 직결된 곳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42만 명은 업무를 계속 이어가되, 셧다운이 해결된 이후에나 보수를 받는다. 공무원 80만 명의 가계 예산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셧다운이 미국 경제에 즉각적으로 미치는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셧다운이 시작된 22일은 연방정부 기관이 원래 문을 닫는 주말인 데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초기 여파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주정부들은 연방정부 예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정부 예산을 투입하며 지원에 나섰다. 이 덕에 그랜드캐년 등 국립공원과 주요 박물관, 뉴욕 '자유의 여신상' 등 미국 대표 관광지는 차질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셧다운이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피해가 누적되면서 충격이 커질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최신 보고서에서 문제가 된 예산안 규모는 전체 연방정부 예산의 약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에 미치는 피해는 “완만한 수준일 것”이라면서, “셧다운은 미국의 이번 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매주 약 12억 달러씩 갉아먹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셧다운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 그래도 최근 글로벌 경제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투자심리가 잔뜩 위축된 상황에서 셧다운을 둘러싼 정국 혼란은 투자자들의 공포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증시는 셧다운 우려가 악재로 작용하면서 20일과 21일 이틀 연속 급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