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행동주의펀드 덕(?)에 벤처기업가에게 차등의결권을 주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지배구조 약점을 노리는 행동주의펀드로부터 막 걸음마를 떼려는 벤처기업을 지켜주자는 것이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벤처기업 창업자가 보유한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다.
◆벤처기업육성법 개정 논의 활발
이번 법안을 보면 벤처기업 대주주 의결권은 1주에 최대 10개까지 늘어난다. 물론 현행 상법은 1주에 1개만 의결권을 인정한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벤처기업 창업자는 적은 주식으로 경영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기업이 몸집을 키울 때까지는 부담 없이 투자유치에 나설 수도 있다. 지금까지 벤처기업은 부채 위주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면 지분율이 희석돼서다.
행동주의펀드가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얼마 전에는 토종 행동주의펀드로 불리는 KCGI가 이런 우려를 더욱 키웠다. 한진그룹 지배회사인 한진칼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위협해서다.
대개 행동주의펀드는 주식을 사들이고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단기적인 이익만 챙기면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차등의결권을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과 페이스북도 차등의결권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이번 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개국이 현재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300대 상장사 가운데 약 20%가 차등의결권을 활용한다.
박현성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젊은 IT 혁신기업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선 "득보다 실" 지적도
차등의결권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창업주가 독단적으로 사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얼마 전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차등의결권이 성장사다리라는 주장에 근거가 없다"며 "단기적인 효과가 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차등의결권 도입에 따른 파장을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해온 주식에 대해서만 차등의결권을 주는 '테뉴어 보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에 자본을 묶어 두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규기업 자금조달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기업 간 경쟁을 둔화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어떤 식으로든 주주를 차별하면 원활한 기업 발전과 시장원리 작동에 장애를 초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