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북한내 미신고 미사일 기지 13곳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면서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이 이미 파악했던 사안으로, 북한은 미사일 기지폐기가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도 맺은 바 없다며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섰다.
◆靑 "북·미 간 폐기의무 담은 협정 없어" vs 美 "싱가포르 약속 지켜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보고서의 출처는 상업용 위성인데, 한·미 정보 당국은 군사용 위성으로 훨씬 더 상세하게 파악하고 면밀히 주시 중"이라며 한·미 정보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고 논평했다.
보고서에 대해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평가한 김 대변인은 CSIS가 북한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비밀기지 중 한 곳으로,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일대의 미사일 기지를 지목한 것에 대해 '단거리 미사일용'이라고 반박했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IRBM(중장거리탄도미사일)과는 무관한 기지라는 설명이다.
CSIS가 삭간몰 미사일 기지 등을 '미신고 기지'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서도 김 대변인은 "신고를 해야 할 어떤 협약도, 협상도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신고를 받을 주체도 없다"고 말했다.
또 CSIS의 분석을 두고 북한이 한·미 양국을 '크게 기만'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주장에 대해서도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해당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
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이 북한의 입장을 해명해주는 듯한 모양새라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선 "'미신고''속임수'와 같은 내용이 북·미 대화가 필요한 시점에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협상 테이블이 성사되는 걸 저해할 수 있어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와 외교부 등 관계 부처들도 한·미 양국이 해당 사안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노재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SRBM 기지를 운용 중이라는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지역은) 한·미 공조 하에 감시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입장과 달리, 미국 국무부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약속은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제거를 포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국무부 측은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약속을 지켜나간다면 북한과 주민들에게 훨씬 더 밝은 미래가 놓여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국무부 측은 해당 내용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정신에 어긋나는지에 대해서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고 RFA는 전했다.
◆CSIS 보고서에 美언론·조야 촉각…북·미협상 자체에 큰 영향 없을 거라는 분석도
북한의 미공개 미사일 기지가 확인되면서 미국 언론과 조야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더욱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CSIS의 이번 보고서에 대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더는 핵 위협은 없고 진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현재 직면한 북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보고서는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긴 했어도 핵 시설은 절대 해체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근거로, 실제 북한은 오히려 비축량을 더 늘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WP는 그러면서 지난 여름에 나온 정보당국의 보고서도 "북한의 한 공장에서 새로운 미사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미 정보당국이 이런 '미신고' 내지 숨겨진 시설의 '존재'를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안이 북·미 협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미국 측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지 않는 불신이 뿌리 깊었던 데다가, 명시된 약속을 위반한 게 아니기 때문에 북·미 협상의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합의문을 위반하고 속였다면 북·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명시된 약속도 없었고 북·미 간 협상이 미국의 기대 속에서 이뤄져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이번 보고서가 양국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볼턴 보좌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북미 대화 분위기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걸 암시했다.
이는 CSIS가 북한 미사일기지를 공개한 이후,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민간 싱크탱크에서 나온 이번 보고서의 경우, 미국이 남·북한 모두에게 전하는 일종의 '압박 수단'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민간 연구기관인 CSIS가 평소 확보해뒀던 북한지역 위성촬영 자료를 현 시점에서 공개하고, NYT가 곧장 추가 내용을 보도한 것은 대북 압박의 의도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남·북한 각각에게 대북 제재와 비핵화 이행 필요성을 강조하는 미국 당국의 경고 메시지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