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등 글로벌 통상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예산안을 둘러싼 유럽연합(EU) 내 갈등이 커지면서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등 유럽 주요 통화의 약세가 가팔라졌다.
24일(이하 현지시간) 달러/파운드 환율은 전날보다 0.45% 내린 1.289달러를 기록했다. 9월 이후 한 달 만에 1.29달러를 하회하면서 새 저점을 찍었다. 달러/유로 환율도 1.1402달러로 0.6% 하락했다. 달러 대비 파운드·유로화 가치가 지난달 각각 1.5%, 2.9% 하락한 뒤 약세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반면 달러화는 강세를 이어갔다.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6개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49% 높은 96.18을 기록했다. 96.60으로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 8월 이후 2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심리적 저항선인 3%를 훌쩍 넘어 3.13% 수준을 보였다.
유럽 지역 환율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역내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발효를 불과 5개월여 앞두고 EU와 영국 간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점 없이 EU를 이탈하는 것) 우려가 나오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다.
예산안을 둘러싸고 이탈리아와 EU 간 갈등이 커진 것도 환율 불안의 요인으로 꼽힌다. 앞서 이탈리아 정부는 올해 1.6% 수준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내년에 2.4%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예산안을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EU 측이 이탈리아 정부에 "3주 안에 수정 예산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이탈리아는 당초 예산안을 고수한다는 방침이어서 갈등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중 무역전쟁은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도 타격을 입혔다. 독일의 공장 가동이 줄었다는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프랑스도 예산안을 두고 EU와 격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CNBC에 따르면 프랑스의 2019년 예산안에는 일회성 비용을 제외한 구조적 재정적자가 올해와 내년에 각각 GDP의 0.1%, 0.3% 감소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프랑스가 앞서 EU와 합의한 0.6%에 못 미친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프랑스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8년 이후 재정흑자를 낸 기록이 없다. 스페인 자산운용사 트레시스헤스티온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투자 책임자인 다니엘 라카예는 "프랑스는 1974년 이후 재정적자 감소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11번이나 실패했다"며 "EU가 이번 예산안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