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휴대폰 서비스 제공업체인 릴라이언스커뮤니케이션은 지난해 11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3억 달러 상당의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지 못해서다. 인도 통신 재벌의 몰락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아시아 기업들의 채무 부담의 단면을 보여준다. 강달러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신흥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번지는 가운데 아시아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화폐 가치 '떨어지고' 달러 부채 상환 부담 '높아지고'
시장 간 금리 차이를 이용해 최근 몇 년간 달러화 부채를 늘려왔던 인도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인도 신용평가기관인 크리실이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인도 기업들의 채무 규모는 지난 3월 기준 196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가장 많은 부채를 끌어안은 분야는 석유·가스 및 전력 부문으로 전체의 약 61%에 해당한다.
인도네시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에 비해 11% 하락했다. 지난 2일에는 달러당 1만5025루피아까지 환율이 오르면서 루피아화 값이 1998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리포카라와치(Lippo Karawaci)와 알람수트라(Alam Sutera)는 달러화 표시 부채가 각각 10억 달러, 4억8200만 달러에 달한다. 닛케이아시아리뷰(NAR)에 따르면 9월 중순 무디스가 이들 기업의 신용 등급을 B3로 하향 조정하자 주가도 급락했다. 리포카라와치는 올해 주가가 35% 급락했고 알람수트라는 20.7% 하락했다. 자카르타 종합지수도 9.4%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모든 업종이 부채로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항공과 자동차, 알루미늄 등의 업종은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원유와 금 등 대부분의 원재료가 달러화로 거래되는 탓이다. 크리실은 "항공 분야는 마진 영향이 보통 수준보다 높은 만큼 모니터링할 부채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금융위기 이후 최악 수준의 자본유출 맞을 수도"
문제는 이들 대규모 부채의 만기가 대부분 2020년 도래한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기업이 2020년까지 갚아야 하는 달러 부채는 총 185억 달러에 달한다. 통상 채무 상환 시기가 도래하면 채권을 새로 발행해 만기 채무를 상환하지만, 달러 등 외화 표시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온 신흥국으로서는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점진적인 긴축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한 기업들의 빚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변제액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로 신흥국의 채무 부담이 높아지면 연쇄 디폴트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신흥국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는 3조2297억 달러로 추산된다.
자본 유출도 신흥국 경제의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통상 미국 등 선진국들의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신흥시장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회수해 금리 상승 기조인 선진국에 투자한다. 신흥국에 몰렸던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의 자본유출 규모가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 수준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