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규 칼럼] 4차 산업혁명시대와 우리의 좌표

2018-10-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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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규 동아시아센터 회장


20세기 최고의 지성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는 그의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성장기 문명에서 하나의 도전(挑戰)은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하는 응전(應戰)에 의해 극복되며 그 응전이 또 다른 도전을 낳는데, 그 도전 또한 새로운 응전으로 극복된다’ 하였다.

성공적인 응전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인간의 창의력이라고 하면서 창의력이 있는 인간만이 도전을 이겨내고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의 운명과 미래에의 설계에는 끊임없는 도전과 이에 맞는 새롭고 창의적인 응전이 있어야만 한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에 의해서 도전은 극복 될 수 있다 하였다.

우리 역사의 예에서,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도전에 맞서 왜적을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창조적 소수자일 것이다.

공(公)은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표상(表象)이다.

흔히 성웅(聖雄)이라 불리어지는 공은 천부적인 재능과 운명에 힘입어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했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지대하다 하겠다.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거칠고 파괴적인 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가장 거대한 폭력은 전쟁이다.

이순신은 그런 전쟁을 가장 앞장서 수행해야 하는 직무를 가진 무장(武將)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돌파해야 할 역경이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훨씬 가혹했으리라는 예상은 자연스럽다. 실제로 그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거대한 운명을 극복하고 위업을 성취한 인간의 어떤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모바일 등을 통해 실재와 가상이 통합되어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하는 산업혁명을 뜻한다.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에서,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은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의 구축이 기대되는 산업상의 변화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는 인공지능, 로봇공학, 양자암호,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수단, 3D 프린터, 나노 기술 등의 혁신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신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유일한 길은 인재육성과 교육의 혁신에 달려 있을 것이다. 4차 문명혁명이라고 말해도 좋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법, 종교, 산업,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산업의 변화로만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 사회 문화 전반과 연관돼 있고, 그 모든 주체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창의·융합 인재 확보를 위해 인적 자원 양성 시스템의 전면 개편 또한 시급하다 하겠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도전·창의·배려심을 갖춘 인재가 절실하다. 대학교육 또한 기업현장의 요구하는 인재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2030년까지 최대 460조원의 경제효과를 일으키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토인비는 탄생한 문명의 성장도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해야 가능하며, 그러한 성장은 단순한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만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승화라고 보았다.

그는 ‘문명의 동시대성과 유형화 및 순환론을 밝혀냄으로써 문명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도출했고, 문명필멸(文明必滅)이라는 비관주의를 지양하고 순환에 의한 문명의 재생이란 낙관주의적 역사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목표가 아니라 그 너머의 더 야심찬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은 역설적이지만 참되고 중요한 인생의 원칙이다.’ 하였다.

우리는 지금 현재에도 각자 다른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아가고 있다. 그 목표들은 개인이나 국가 또는 모든 단체들 또한 동일하다. 단편적으로 끝나가는 목표가 아니라 대부분은 그 목표 뒤에 존재하는 더 큰 최종적인 목표를 향해 거치는 과정일 것이다.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은 목표들이 있기에 이를 향해 달리면서도 지치기 쉽다.

하지만 토인비의 말처럼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때에는 언제나 그 너머의 최종 목표를 바라보며 지금 지친다고 금방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큰 목표는 지금 당장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항상 이를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항상 가까운 곳만이 아닌 멀리 바라봐야 하는 것이 인생의 원칙이며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므로, 언제나 지금 당장의 편안함보다는 미래의 성공을 택하는 슬기로운 선택을 우리 모두는 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센터 회장 윤 창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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