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출범은 변화하고 혁신하는 롯데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을 실현하는 본격적인 걸음이다.”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12일 롯데지주 출범식에서 밝힌 포부다. 이 자리에서 새로운 롯데 사기(社旗)를 흔들던 신동빈 회장 또한 ‘뉴롯데’의 시작이 바로 롯데지주 출범임을 강조했다.
1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롯데는 오는 5일 신동빈 회장의 경영비리 및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관련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침울한 분위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근 2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롯데그룹과 관련된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원심 그대로 인정했다. 이는 신 회장의 제3자 뇌물공여 혐의의 유죄를 인정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롯데 측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불안감과 별개로 재계에서는 신 회장의 항소심을 놓고 롯데지주의 대관(對官)업무팀이 1심 때보다 소극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요즘 서초동에 롯데 관계자들이 안보인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신동빈 회장 공판이 열릴 때만 얼굴을 비추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예상치 못하게 1심에서 법정구속 된 만큼 2심 재판부로부터 어떻게든 무죄나 집행유예를 이끌어내야 함에도, 롯데가 최근 대관에 소극적인 것은 오너 경영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앞서 롯데그룹은 2015년 신동빈 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이른바 ‘형제의 난’을 야기한 이후, 신 회장이 이끄는 독주 체제가 됐다.
신 회장이 경영의 선두에 서면서, 그의 신임이 두터운 황각규 부회장과 소진세 사장 등이 정책본부를 중심으로 롯데를 이끌어왔다. 그동안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도 잠잠해졌고 지난해 롯데그룹 50주년과 롯데지주 출범으로 ‘뉴롯데’는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신 회장이 연일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롯데에 암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즈음 신격호-신영자-신동주-서미경 등 롯데 오너 일가의 경영 비리 사건 재판까지 시작되면서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에서 보다 서초동에서 더 보기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일 재판장에 서야 했다.
급기야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롯데는 충격에 빠졌다. 이후 황각규 부회장과 각 부문별 BU장이 참여하는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 수습에 나섰지만 국내외 주요 인수합병(M&A)과 채용 계획 등이 모두 미뤄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부재로 인해 그룹의 주요 경영 플랜이 중단될 수밖에 없지만, 황각규 사단 또한 이를 타개할 마땅한 복안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룹 내부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일가가 아예 부재한 것이 보다 적극적인 경영을 못하는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현재 신격호 명예회장을 비롯해 그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신 회장의 형제들은 경영 비리 혐의로 일선에서 배제됐고, 신 회장의 아들은 일본의 한 기업에서 아직 경영수업 중이다.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이끌던 신 회장을 대신할 가족이 없다보니, 전문경영인 체제를 견제하거나 감시할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구속된 이후 롯데그룹 내부에 전문경영인을 통솔하거나 견제할 오너 일가가 아예 부재인 상황이 특히 안타까운 대목”이라면서 “오는 항소심에서 또 한번 실형을 선고받는 최악의 상황이 되면, 현재 황각규 비상경영위 체제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롯데지주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을 앞두고 1심 때보다 롯데 대관팀은 백방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 그간 중단됐던 인수합병과 순환출자 관련 작업들 또한 순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는 오는 5일 오후 2시 30분 신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할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뇌물 공여와 경영비리 혐의로 신 회장에게 징역 14년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