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안중근이 '만명보다 낫다'고 말한 스승 이상설의 유언은...

2018-08-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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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사는 왜 북간도 서전서숙까지 달려갔는가…15일부터 이상설기념관 기금마련 전시, 인사동서

# 무덤도 만들지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48세 이상설(1870-1917)이 눈을 감으며 한 말이다. 이상설은 1914년 국외(북간도 지역)에서 최초로 망명정부(대한광복군 정부)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에 해당하는 정도령(正都領)을 맡았다. 이듬해 상해로 이동한 이상설은 3월에 신한혁명당을 결성하고 본부장을 맡는다. 그리고 2년뒤인 1917년 3월2일 눈을 감는다.

임종을 지켰던 이동녕과 백순, 조완구, 이민복은 아무르 강가에 장작을 쌓아놓고 화장하여 그 재를 북해바다에 날렸다. 글과 유품도 그때 모두 태웠다.
 



을사조약 때 이상설은 고종황제에게 다섯번 상소를 올렸다. 그 말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 황제께서 죽음을 결심하고 을사조약을 거부하십시오

인준을 해도 나라가 망하고 안해도 망할 바에야 황제가 죽음을 결심하고 단연코 을사조약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이 조선의 선대 군왕이 폐하에게 준 자리를 저버리지 않는 길입니다.


(원문은 이렇다. "대저 그 약관이란 인준해도 나라는 망하고 인준을 아니 해도 나라는 또한 망합니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바에야 차라리 순사의 뜻을 결정하여 단연코 거부하여 열조열종의 폐하께 부비하신 중임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우린 그를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1907년 6월 15일)로 기억한다. 이상설이 정사였고 이준과 이위종이 부사였다.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고 대한제국의 문제를 국제공론화하는 미션을 받고 떠났다. 일제의 눈을 피하느라 열흘쯤 뒤에 헤이그에 도착했다. 당시 미국, 프랑스, 독일, 중국 등의 위원에게 회의를 참석시켜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특사들은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고 파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7월9일에 신문기자단 국제협회가 열렸는데 이위종은 프랑스어로 '한국의 탄원'이란 제목의 연설을 했다. 14일엔 이준이 '자결'함으로써 독립의 뜻이 얼마나 절박한지 세계에 알렸다. 18일 일제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따지며 고종황제를 퇴위시킨다. 한편 이상설은 1908년 2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한인 애국동지대표회가 열렸고, 그는 러시아대표로 참가했다. 이후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지도자로 독립운동을 펼쳤고, 그 가운데 안타깝게 병사하고 말았다.


#이상설은 안중근이 가장 존숭하는 자, 일제의 정보보고

"이상설은 안응칠이 가장 존숭하는 자다. 안응칠은 3년전(1906년) 당시 배일(排日) 목적의 교육에 종사하던 이상설을 찾아가 문하생이 됐다."


이 말은, 일제점령 초기 독립지사를 탄압하던 아카시 모토지로 헌병대 사령관이 비밀보고서에 담은 말이다. 안응칠은 안중근 의사를 가리킨다. 문서는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안의사가 이토를 사살하고 체포된 뒤, 아카시가 안의사의 배후세력을 찾기 위해 밀정들에게서 받은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안중근이 1906년8월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간 것은 이상설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이상설을 모셔오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인 것(고종황제의 특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도 안중근이었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이상설을 이렇게 말했다고 아카시보고서는 전한다.


# 용량이 크고 사리에 통하는 대인물이다, 안중근이 말한 이상설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



"이상설선생은 포부가 매우 크며, 세계 대세에 두루 통해 동양의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만인이 모여도 이상설에는 미치지 못한다. 용량이 크고 사리에 통하는 대인물로 큰 신하의 그릇이 됨을 잃지 않았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이상설의 철학과 닿아있다는 지적도 있다.

# 15일부터 서전서숙 기념관 건립 기금 마련 작품전시회

오는 8월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 4층에서 '서전서숙-이상설 선생 기념관 건립기금 마련 작품전'이 열린다.

서전서숙은 을사조약 체결 이후 1906년 망명한 이상설이 북간도 연길현 용정촌에서 건물을 매입해 설립한 항일 민족교육의 요람이다. 안중근이 천리를 머다 않고 찾아왔던 그곳이다. 서전서숙의 수장은 이상설이었고, 직접 수학(산술)을 가르쳤다.

이상설 선생 기념관 건립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이종찬(전 국정원장), 윤형섭(전 교육부장관), 이상배씨이며, 이시종(충북지사), 송기섭(충북 진천군수), 이석형(전 전남함평군수), 김승유(전 하나금융회장)씨 등이 범추진위원장을 함께 맡고 있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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