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전반에 경기둔화 조짐이 감지되자, 정부가 대기업에 구원을 요청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표방하는 ‘분수효과’가 한계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다음 달 삼성을 방문하겠다고 언급했다. 대기업에 일자리와 투자 등을 부탁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혁신성장은 시장과 기업이 주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대기업‧중견‧중소기업도 기업의 규모‧업종을 마다하지 않고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가 다음 달 삼성과 만나게 되면 △구본준 LG그룹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후 다섯 번째 총수급 면담이다.
삼성은 이들 총수급 면담의 방점으로 인식된다. 그동안 만났던 대기업들도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추세를 볼 때 삼성도 편승할 공산이 크다.
실제 김 부총리는 “조만간 한 대기업에서 3조∼4조원 규모, 중기적으로 15조원 규모 투자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기업은 김 부총리가 지금까지 만난 LG‧현대차‧SK‧신세계 중 한 곳이 유력하다.
이처럼 정부가 대기업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당초 추진하던 ‘분수효과’는 숨고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이 높다. 분수효과는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면 소득이 늘어나고 소비도 확대돼 경기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낙수효과는 대기업과 부유층 소득이 늘어나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으로 흘러간다는 이론이다. 문 정부 기조는 낙수효과보다 분수효과에 가깝다. 소득주도 성장도 분수효과와 궤를 같이한다. 최저임금 역시 분수효과 이론에 부합하는 제도다.
그러나 문 정부 1년 동안 분수효과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대기업이 사정의 칼날을 피해 잔뜩 움츠러들자, 투자 위축과 함께 경제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대기업이 위축된 사이, 한국경제는 올해 경제성장률 3% 달성이 어려워졌다. 2분기 소비부진과 설비투자 쇼크는 하반기 내수 시장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전분기보다 6.6% 감소했고, 건설투자도 1.3% 줄었다. 투자가 모두 역성장한 것이다.
특히 하반기에도 투자가 늘어날 요소를 찾기 힘들다. 정부가 대기업에 손을 뻗은 이유다. 고용 역시 암울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과 소상공인 등 밑바닥은 아수라장이다. 대기업이 하반기 대규모 채용으로 숨통을 터주지 못한다면 ‘고용한파’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내놓은 ‘하반기 기업 경영환경 전망·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하반기 투자 규모를 상반기보다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 비중은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44.8%에 그쳤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이 안 좋아지면 가계 측면에서는 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소비저하로 연결되면서 내수가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중소기업 육성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대기업이 여러 (정부의) 압박으로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만남도 있었던 만큼, 대기업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시기가 됐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