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도 기회를 잡는다면 '베트남의 기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한 뒤 미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면 베트남의 전철을 밟아 번영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되면서 '베트남 모델'에 관심이 쏠린다.
◆ 1986년 '도이 머이'에서 1994년 미국 제재 해제까지
도이 머이 정책을 채택한 이듬해인 1987년에는 외국인 투자법을 공포해 민간 기업 등 외국인 투자를 장려했다. 낮은 출산율을 염두에 두고 '두 자녀 정책'도 시행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3만 개 이상의 민간 기업이 설립되면서 노동집약적인 수출 산업들이 양성됐다. 도이 머이 시행 이후 경제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했다. 이 같은 극적인 경제 효과를 낸 데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도 한몫 했다.
베트남은 베트남전(1964~1975년) 이후 미국과 적대 관계로 남았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빌미로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유럽과의 공조 제재로 도이 머이 정책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베트남전에서의 미군 유해 송환 작업에 적극 협력하면서 미국과의 신뢰를 쌓았다. 미국외교학회에 따르면 1994년 미국의 경제 제재가 해제됐고 1995년에는 미국과 국교를 다시 수립했다. 2016년에는 미국의 마지막 제재였던 무기 금수까지 해제됐다.
베트남 정부는 1991년 제7차 전당대회에서 전방위 외교노선을 채택한 이후 외교 관계 정상화에도 힘을 쏟았다. 1991년과 1992년에는 중국, 한국과 각각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1995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시작으로 국제기구에 잇따라 가입했다. 이후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2017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385달러에 달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도 175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도 제2베트남 가능성 충분"...국제 제재는 난관
북한도 시장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대규모 외국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면 베트남과 같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풍부한 천연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덕이다. 북한광물자원연구소는 2013년 현재 북한의 광물 자원이 6조 달러 규모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전체 GDP 가운데 40%는 광물과 가스 등의 자원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핵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2016년 북한의 경제 성장률은 3.8%에 달해, 1999년(6.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량도 28억2000만 달러 규모의 4.6%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이후 북한의 5개년 성장률은 연평균 1.2%를 기록했다"며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수년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개혁을 단행한다면 무역과 FDI가 늘면서 경제 성장률을 3% 증가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트남도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20년간 미국과의 교역 규모가 8000% 증가했다. 2016년 최대 수출시장이 된 미국과의 교역에서 약 320억 달러(약 35조8000억원)의 흑자를 내기도 했다.
다만 북한식 개혁이 성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트남의 경우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앞서 이미 1993년 일본·유럽 등의 공공 개발 원조를 받기 시작해 개혁 성공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유엔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속에 상당수 자금줄이 차단된 상태다. 베트남처럼 점진적인 개혁에 성공하려면 미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인 만큼 비핵화를 두고 북한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