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경제회복 키워드로 '규제개혁'을 꺼내들었다. 규제개혁은 정부 출범 1년을 맞은 시점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 있다.
까다롭거나 복잡한 규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 하는 일이 다반사다. 규제개혁이 자칫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열린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에서 준비과정이 부실하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내비쳤다.
최근 벌어진 일들은 그간 공직사회가 현장감 없이 업무를 해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규제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면에 부상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소식에 산업계는 반색했다.
하지만 정책 완성도가 부실하다 보니 시작도 못하고 폐기되는 사례가 잦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표적 규제개혁 과제였던 서비스산업활성화 방안은 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이 점차 현장을 멀리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모 부처 A 국장은 올해 초 장관에게 규제개선 관련 민원 처리를 지시받았다. 그러나 A 국장은 이를 지방사무소에 이관하고 올라오는 보고서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민원 관련 당사자는 담당 부처 공무원을 만나보지도 못했다. 특히 A 국장은 물론 담당 공무원들은 지속적인 규제완화 민원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현장 실사를 나가지 않았다. 해당 민원은 2년 동안 담당 국장과 과장을 포함, 7명이 바뀔 동안 개선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실정이다.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혁신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탁상행정이란 표현이 적어도 이 정부에선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 지난 1월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작심 발언이다.
반년가량이 지난 현재 규제개혁은 여전히 답답한 모습이고, 공무원들의 태도 또한 변하지 않고 있다.
5일 규제정보포털에 올라온 현장 건의 규제혁신을 살펴보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낸 현장 건의 절반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장 건의 규제혁신으로 정부가 접수한 안건은 총 110건. 이 중 51건은 방안 검토 중이며, 4건이 국회 심의 중이다. 완료된 안건은 55건으로 딱 절반에 머문다. 접수된 안건의 절반이 언제 규제가 풀릴지 기약할 수 없다는 의미다.
특히 검토 중인 51건에는 정부가 조금만 속도를 내면 규제를 풀 수 있는 안건이 다수 포함됐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이해관계자 대립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다.
또 규제개혁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 '부처 간 업무 떠넘기기' 등 소극적 행정도 여전하다.
당장의 이슈만 쫓아가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4차 산업혁명 등 결정권자 입맛에 맞는 정책 위주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인식 자체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 전직 공무원은 "최근 공직사회는 장관이나 청와대, 대통령 입맛에 맞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며 "자신의 의견이나 확고한 방향을 내지 못하는 공직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춘 규제개혁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정부가 규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공무원 스스로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눈높이보다 결정권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형식적 규제개혁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한 중앙부처 B 과장은 "최근 초임 공무원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며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해 보고를 올리더라"고 푸념했다.
또 다른 전직 공무원은 "공직사회는 해외파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점차 엘리트화하는 공직사회가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다. 규제개혁이 더딘 가장 큰 이유인 셈"이라며 "이렇다 보니 대통령은 규제완화를 주문하는데, 실무부처는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공무원 스스로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과감한 제안과 경청이 필요한 시기"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