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난 최태원 SK 회장은 한·중 재계를 아우르는 소통 채널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를 겪으며 양국 관계의 취약성이 드러난 게 계기였다.
한 재계 인사는 "양국 관계가 틀어지자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동네북이 됐다"며 "한국 재계의 목소리를 중국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중 기업인 대화 정례화 건의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이 먼저 접촉한 중국 측 인사가 있다. 쩡페이옌(曾培炎)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CCIEE) 이사장이다.
2009년 설립된 CCIEE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직접 관리하는 싱크탱크로, 300개 이상의 국영·민간기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전직 장·차관급 인사와 지방정부 성장·부성장 출신이 부이사장을 맡고 있어 정부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
쩡 이사장도 한·중 재계의 고위급 인사들이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쩡 이사장과 교감을 이룬 최 회장의 건의는 대한상의를 거쳐 청와대로 전달됐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대한상의와 CCIEE는 양국 간 기업인 대화의 정례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박 회장과 함께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최 회장은 "양국의 경제·무역 발전과 기업 간 교류·협력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은 실무 협의를 거쳐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고위 기업인 대화'를 개최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쩡 이사장이 각각 양측의 위원장을 맡았다.
기업인 외에도 변양균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오영호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다이샹룽(戴相龍) 전 인민은행장, 웨이젠궈(魏建國) 전 상무부 부부장(차관) 등 양국의 전직 고위 공직자들이 함께 참여해 무게감을 더했다.
쩡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SK의 건의로 CCIEE와 대한상의가 독창적인 구상에 나서 이번 회의가 열리게 됐다"며 최 회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의(謝意)를 전했다.
◆10년 인연, 고위채널 구축 성과로
최 회장과 쩡 이사장은 10년 가까이 친분을 이어온 사이다.
2006년 최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내부자가 되자'는 내용의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발표했다.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같은 해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상임이사를 맡으며 중국 정·재계 인사들과도 다양한 '관시(關係)'를 맺었다.
최 회장과 쩡 이사장은 2009년 조우했다. 국무원 부총리를 끝으로 공직을 떠난 쩡 이사장이 보아오포럼 부이사장에 선임된 해다.
쩡 이사장은 중국 경제계의 거물이다. 중국의 거시경제 컨트롤타워인 공산당 내 중앙재경영도소조 부비서장을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맡았다.
또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발개위의 전신인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으로 재직하며 아시아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이를 발판으로 중국 정치 권력의 핵심인 중앙정치국원이 됐고 부총리직까지 올랐다.
경제 분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쩡 이사장은 중국 시장에 유독 애착을 갖고 있던 한국의 한 기업인을 눈여겨보고 많은 조언을 건넸다.
2012~2015년 최 회장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복역하면서 왕래가 끊기기도 했지만, 이후 최 회장이 사면·복권되고 쩡 이사장이 CCIEE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회했다.
사드 사태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두 사람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인연은 양국 간 갈등을 미연해 방지할 수 있는 민간 차원의 고위급 대화 채널 구축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는 기자와 만나 "중국이 '고위 기업인 대화'를 정례화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 사례"라며 "앞으로 잘 가꾸면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대화를 마친 한·중 기업인들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예방했다.
리 총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대신 중난하이(中南海) 내 총리 전용 접견실 즈광거(紫光閣)에서 이들을 맞았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등 해외 귀빈들을 만날 때 이용하던 곳이다.
의전·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 기업인들과 진솔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를 골랐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