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한·중 '갈등 방지턱' 만든 최태원의 '관시'

2018-07-0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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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경제계 거물 설득, 고위급 대화 통로 뚫어

美·日·EU 이어 네번째, 중량급 인사 대거포진

양국 위기 재발시 물밑 조율 동력 확보 성과

지난달 29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고위 기업인 대화'에 참석한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쩡페이옌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CCIEE) 이사장.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난 최태원 SK 회장은 한·중 재계를 아우르는 소통 채널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를 겪으며 양국 관계의 취약성이 드러난 게 계기였다.
정부 간 대화가 단절되더라도 민간 차원의 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게 절실해졌다. 박 회장도 공감을 표했다.

한 재계 인사는 "양국 관계가 틀어지자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동네북이 됐다"며 "한국 재계의 목소리를 중국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중 기업인 대화 정례화 건의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이 먼저 접촉한 중국 측 인사가 있다. 쩡페이옌(曾培炎)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CCIEE) 이사장이다.

2009년 설립된 CCIEE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직접 관리하는 싱크탱크로, 300개 이상의 국영·민간기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전직 장·차관급 인사와 지방정부 성장·부성장 출신이 부이사장을 맡고 있어 정부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

쩡 이사장도 한·중 재계의 고위급 인사들이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쩡 이사장과 교감을 이룬 최 회장의 건의는 대한상의를 거쳐 청와대로 전달됐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대한상의와 CCIEE는 양국 간 기업인 대화의 정례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박 회장과 함께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최 회장은 "양국의 경제·무역 발전과 기업 간 교류·협력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은 실무 협의를 거쳐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고위 기업인 대화'를 개최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쩡 이사장이 각각 양측의 위원장을 맡았다.

기업인 외에도 변양균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오영호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다이샹룽(戴相龍) 전 인민은행장, 웨이젠궈(魏建國) 전 상무부 부부장(차관) 등 양국의 전직 고위 공직자들이 함께 참여해 무게감을 더했다.

쩡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SK의 건의로 CCIEE와 대한상의가 독창적인 구상에 나서 이번 회의가 열리게 됐다"며 최 회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의(謝意)를 전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CCIEE) 간의 '한·중 기업인 대화 정례화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최태원 SK 회장(뒷줄 왼쪽부터)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쩡페이옌 CCIEE 이사장. [사진=CCIEE 제공 ]


◆10년 인연, 고위채널 구축 성과로

최 회장과 쩡 이사장은 10년 가까이 친분을 이어온 사이다.

2006년 최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내부자가 되자'는 내용의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발표했다.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같은 해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상임이사를 맡으며 중국 정·재계 인사들과도 다양한 '관시(關係)'를 맺었다.

최 회장과 쩡 이사장은 2009년 조우했다. 국무원 부총리를 끝으로 공직을 떠난 쩡 이사장이 보아오포럼 부이사장에 선임된 해다.

쩡 이사장은 중국 경제계의 거물이다.  중국의 거시경제 컨트롤타워인 공산당 내 중앙재경영도소조 부비서장을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맡았다.

또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발개위의 전신인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으로 재직하며 아시아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이를 발판으로 중국 정치 권력의 핵심인 중앙정치국원이 됐고 부총리직까지 올랐다. 

경제 분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쩡 이사장은 중국 시장에 유독 애착을 갖고 있던 한국의 한 기업인을 눈여겨보고 많은 조언을 건넸다.

2012~2015년 최 회장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복역하면서 왕래가 끊기기도 했지만, 이후 최 회장이 사면·복권되고 쩡 이사장이 CCIEE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회했다.

사드 사태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두 사람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인연은 양국 간 갈등을 미연해 방지할 수 있는 민간 차원의 고위급 대화 채널 구축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는 기자와 만나 "중국이 '고위 기업인 대화'를 정례화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 사례"라며 "앞으로 잘 가꾸면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대화를 마친 한·중 기업인들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예방했다.

리 총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대신 중난하이(中南海) 내 총리 전용 접견실 즈광거(紫光閣)에서 이들을 맞았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등 해외 귀빈들을 만날 때 이용하던 곳이다.

의전·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 기업인들과 진솔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를 골랐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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