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을은 여태껏 보수당이 우세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누구를 찍겠다'라는 표현을 안 하더라구요. 오리무중입니다."
6·13 지방선거 공식선거 운동 둘째 날인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만난 윤병오씨(80)는 이번 송파을 재·보궐선거 민심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거여동 주민 박모씨(60대·여)도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 유능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지금으로선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아직은 다들 누굴 뽑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 송파을은 이번 재보선의 승패를 가름할 최대 격전지로 꼽히고 있다.
송파을은 16대부터 19대까지 내리 보수당이 승리한 '보수 텃밭'이었지만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무공천'을 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20년 만에 깃발을 꽂았다.
이날 송파에서 만난 시민들은 당과 정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높은 당 지지율을 바탕으로 송파을에서 최재성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민심은 녹록지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부동산 재건축 연한 강화와 보유세 개편 움직임 등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 지역 주택 매매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최재성 민주당 후보와 박종진 바른미래당 후보는 이날 회관 6층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주최로 열린 '경로당 지도사 교육' 행사를 찾은 이 지역 경로당 회장·사무장 300여명을 공략해 선거 유세를 펼쳤다.
특히 박 후보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중년 여성에게 악수를 청할 때 무릎과 허리를 바짝 굽히는 등 눈높이를 맞추려는 모습을 보였다. 배현진 자유한국당 후보는 이날 오후 비공개 일정을 소화했다.
◆"대통령 마음에 들어도 부동산 정책 때문에…"
반려견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있던 주민 김모씨(50대·여)는 "대통령이 일단 마음에 드니 민주당 후보를 고르자는 마음이 크다"면서도 "정부의 재건축 연한 강화 방침 때문에 한국당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재건축 정책 때문에 특정 후보를 선택하려는 분들이 있다"며 "지난 대선 당시 인근 초등학교 학부형 사이에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입도 못 열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단지 주변을 산책하던 주민 한혜원씨(60·여)는 "개인적으론 최재성 후보를 좋아하지만 지지하는 건 배현진 후보"라고 했다. 한씨는 "지금은 너무 여당 쪽에 쏠리고 있다. 한쪽으로 몰아주면 독재로 이어진다"면서 "그걸 막으려고 한국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 "재건축 연한 강화는 찬성이지만 보유세 인상엔 반대"라며 "투기 목적으로 3번, 4번 이사한 사람이나 다주택 보유자라면 모른다. 저는 여기서 32년째 살고 있는데, 이런 사람에게 보유세를 깎아주진 못할망정 어떻게 올린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야권은 송파 지역 주민들의 이러한 민심을 적극 파고들어 표를 얻겠다는 전략이다.
배현진 한국당 후보는 30년이 지난 노후주택은 재건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기한 연장은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도록 입법화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 현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를 '세금 폭탄'으로 규정, 향후 보유세·거래세 인상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박종진 바른미래당 후보 역시 잠실본동과 삼전동, 석촌동에 전면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종합부동산세를 개정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전면 폐지하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를 면제하는 등 부동산 과세기준을 완화하겠고 했다.
이에 맞서는 최재성 민주당 후보는 '진보적 토목' 개념을 내세우며 차별화를 꾀했다. 송파의 도시 개발을 그동안의 건물공학적 측면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후보는 이를 위해 송파구 내 탄천 통로를 지하화하고 탄천을 자연 친화형 수변공원으로 조성하는 '나의 정원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 '송파 토박이' 시장 상인들 "서민경제, 당선되면 뒷전"
가락시장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는 60대 한 남성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보유세 얘기가 나오는데, 서민들이 평생 돈을 모아 집 한 채 가지는 데 이래선 안 된다"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세법이 바뀌면 서민들은 다 죽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도 좋지만 서민 경제도 살려야 한다. 우리가 살고 봐야 한다"며 "언론에선 송파을에서 민심이 팽팽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 민심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이쪽에서 큰 민심을 못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근 석촌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송모씨(61·여)는 "정치에 대해 모른다"며 "누가 이기든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우리 서민들이 정치에 얼마나 관심을 두겠느냐"고 말했다.
송씨는 "선거 운동할 때만 서민 경제를 위해 애써주겠다 하고 정작 당선되면 뒷전"이라며 "물가는 계속 오르고 그 사람들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으니 장사가 안 된다"고 성토했다.
석촌시장 방앗간에서 일하는 한 남성도 "우린 먹고사는 것밖에 모른다"며 "장사가 안돼서 앉아서 노는 것만 하다 보니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다. 시장 경기가 안 좋은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