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창동 감독 "'어벤져스'와 싸우는 '버닝', 그 또한 운명"

2018-05-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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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으로 8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이창동 감독[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그야말로 뜨거웠다. 영화 ‘오아시스’, ‘밀양’, ‘시’ 등 작품마다 언론과 평단·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창동(64)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버닝’은 말 그대로 관객들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앞서 영화 ‘버닝’은 제작 단계부터 개봉까지 뜨거운 ‘불길’ 속에 휩싸였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것부터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것, 유아인과 스티븐 연이라는 스타 배우를 기용한 것과 관객들에게 낯선 신예 배우 전종서를 내세웠다는 점,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것까지 어느 하나 화제 되지 않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불꽃같이 타올라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의 이모저모들. 이창동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 인터뷰를 가진 이창동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버닝'으로 8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이창동 감독[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칸 국제영화제 현장 반응은 어땠나?
-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왜 이러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칸 영화에 초청받는 작품이 꼭 예술영화만은 아니다. 다만 개성이 강한 영화가 초청받고 그에 따라 호오(好惡)가 나뉘기도 하는데 ‘버닝’은 호오가 없더라. 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좋다고 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읽히는 걸까 궁금하긴 했다.

국내 반응과는 조금 달랐다
- 현장에서도 국내 반응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긴 또 예상외로 온도 차이가 있었다. 이건 또 뭘까? 생각해 봐야겠다. 대충은 알겠고 또 예상했지만 제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더라.

수상 불발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다
-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칸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 여부가 국내 흥행에 직결되는 것, 몰빵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여러 정황이 겹쳐졌던 것 같은데 국내 흥행 심지어는 영화에 대한 평가도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 수상을 하면 더 좋게 해석되는 감상의 이점이라고 할까? 그게 사라져버렸고 또 그 기대를 너무 높여놔서 실망감이 커져 버린 것 같다. 수상을 하게 된다면 한국영화 전체에서도 자극이나 활력을 줄 수 있었는데 그게 잘 안 된 것 같아서 아쉬운 거다.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오가고 있다. 인상 깊었던 해석이 있나?
- 영화 구조 자체가 해석의 가능성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여지를 계속 남겨두고 있는 거고 그게 이 영화의 ‘미스터리’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기도 하고. 그런 해석의 다양함은 당연한 거다. 종수의 소설이다, 종수가 벤을 좋아한 것이다 등 여러 가지 해석을 보았다. 어떤 GV에서는 ‘왜 종수는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가만히 두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해미를 죽였을 수도, 해미를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거다. 알 수 없기 때문인 거다. 한쪽으로만 해석하자면 그렇다. 청년의 분노를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고도 하는데 그건 출발이긴 하지만 분노의 대상은 훨씬 더 멀리 있다고 할까? 막연하다고 해야 하나. 그마저도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여러 서사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서사에도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이 ‘가능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관객들도 있던데
- 제 나름으로는 친절한 힌트도 있고 아예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 것도 있다. 꽤 여러 겹으로 심어놨는데 (관객들이) 눈에 보이는 힌트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힌트마저 과연 힌트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사실 종수의 입장에서 ‘힌트’라는 것들은 모두 확신할 수 없는 거다. 단순히 시계를 두고 갔을 수도 있고 ‘보일아!’라고 불러서 고양이가 다가왔다고 해서 그 고양이가 보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고양이는 이름을 불러서 오는 존재가 아니다.

영화 '버닝'으로 8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이창동 감독[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두고 여러 가지 시선과 편견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감독님의 영화는 어렵다’는 거다
- 위험성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걸 극복한다고 했지만 어려웠나 보다. 제 나름대로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궁금한 것은 우리 사정을 모르는 외국 기자들은 왜 다 좋아할까? 우리 영화도 다른 분위기로 받아들여졌다면 달라졌을 거다. 이건 뭐, 다 과정이니까. 흥행을 성공 모델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건 발전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오늘은 낯설게 봐도 다음에는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게 우리 영화 산업의 선순환인 거다.

또 다른 편견은 ‘메시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파악해야 한다는 거다
- 제 영화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이라는 거다. 사실 저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고. 다만 질문할 뿐이다. 모든 건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를 전하는 건 오히려 할리우드식 오락영화다. 메시지가 더 강한 거다. 정의는 승리한다! 이런 식이니까. 저는 그런 메시지가 우리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의문이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하는 영화를 만든다. 그게 불편할 수도 있는데 무난하게 받아들이는 분에게는 다른 방식의 감동이나 여러 가지 반응이 뒤따르는 거다. 이번 영화도 질문하는 영화다. 서사에 대한 질문이랄까? 이야기를 받아들이는데 그 이야기라는 게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가. 서사에 대한 질문이었다. 더욱 더 나아가서 눈으로 보고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없는 것에 대한 문제다. 이 ‘뭔가’에 대한 질문 때문에 어려워하는 것 같다.

종수는 요즘 세대, 청춘의 얼굴이다. 화려한 스타라는 인식이 강한 유아인을 캐스팅한 이유는?
- 그것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간 유아인은 강렬한 역을 많이 했으니까. 종수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역할이다. 이번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스티븐 연은 어땠나?
- 원래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제작이 연기되며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제게 스티븐 연을 추천하더라. 촬영감독도 벤의 느낌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추천받고) 이틀 뒤 스티븐 연이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어서 만나게 됐다. 벤이라는 인물이 사실 관념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인데 스티븐 연은 잘 알고 있더라. 존재론적 의미를 가지고 잘 설명했다. 마음에 걸리는 건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는데 그 친구의 능력을 믿었고 저도 최대한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하게 됐다.

영화 '버닝'으로 8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이창동 감독과 '버닝' 주연배우 유아인(왼쪽)[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를 만들며 ‘미스터리’를 품게 되었고 그것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감독님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는 무엇인가?
- 이 영화를 만들고 공개하는 과정에서 미스터리가 더 깊어졌다. 옛날에는 ‘세상’이 뭔가 잘못되었는데 그 이유가 눈에 보였다. 정치든, 계급이든 사회 모순을 쉽게 말할 수 있었다. 해결책이라고 믿지 않더라도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싸워도 소용없을 것 같고 뭐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게 요즘 세상인 것 같다. 힘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힘을 합친다고 될 거 같지도 않다는 것이 요즘 세대인 거다. 옛날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분노를 품고 있다. 이 영화도 분노에 대한 영화다.

아이러니함을 많이 느낀다. 이 영화는 종수나 해미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의 이야기인데 공개된 자리는 칸 영화제 레드카펫이지 않나. 그건 벤의 세계, 꼭짓점에 있는 거다. 비현실적인 거지. 믹스매치인 거다. 또 극장에서는 ‘버닝’과 싸우는 상대가 슈퍼 히어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데드풀’처럼 세상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들. 슈퍼 히어로는 세상을 구할 수 있나? 이런 영화와 하필이면 세상의 미스터리에 대해 분노를 가지는 ‘버닝’ 같은 영화가 맞붙어 처절하게 깨지다니. 그 또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같은 서사는 지금 대중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 환영받는 서사는 무엇인지 그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지 그런 생각도 든다. 이게 영화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버닝’이 다 타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상징이나 관념으로 전달되기보다 느낌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영화 말미, 종수의 벌거벗은 이미지 그 자체일 거다. 그다음, 거기에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감정도 두려움인지 통쾌함인지 모르지 않나. 원초적인, 막 태어난 생명체 같은 느낌으로.

‘시’ 이후 ‘버닝’까지 8년이 걸렸다. 다음 차기작도 이렇게 길어지게 될까?
-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그간 놀면서 8년을 보낸 건 아니다. 여러 프로젝트도 있었고 시나리오 준비도 하다가 보류했다. 그런 글들이 많아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많이 있다. 짧은 기간에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 자체를 만드는 것에 대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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