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칼럼] 경제부총리

2018-05-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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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치적이나 강한 인상을 남긴 경제부총리를 꼽으라면  박정희 시대엔 김학열, 남덕우 등이 우선 거론된다. 전두환 정부의 김만제, 김영삼 정부의 한승수 등도 이름을 날렸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땐 이헌재가 단연 손꼽힌다. 진념, 강봉균, 전윤철과 함께 이명박 정부 때의 윤증현 등도 후배관료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거나 존경 받는 부총리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인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대통령과 그 주변 실세들을 잘 설득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시대 이후 경제부총리들은 한층 복잡해진 정치·정책 환경 때문에 모든 걸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이름을 날린 경제부총리들을 보면 대개가 소신과 설득과 소통의 달인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이헌재다. 인연도 없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기 소신을 피력하고 전권을 부여 받은 후 책임경영하듯 환란(換亂)에서 나라를 구해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잘했다고 평가되는 경제부총리들은 또 대개 꾀돌이형이었다. 잘 만나주지도 않으려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무슨 방법을 쓰든 자주 접근했다. 이들을 설득하고, 이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 선수들이었다. 1차로 대통령 측근들에게 매달려보다 여의치 않으면 대통령과의 독대를 어떻게든 성사시켜 이를 통해 담판을 지었다. 

그렇다면 현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어떤가?

우선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들과의 관계를 보면 역대 어느 경제부총리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핵심인맥들이 어느 정부보다도 이념적 '강성(强性)'들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밥먹듯 했던 운동권 출신이거나 재야시민단체 출신들이 많다.  성향상 정의, 분배, 빈부격차 해소, 반(反)재벌, 복지 강화 등에 평생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노무현 정부는 뜻을 펼쳐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실패했다. 이들이 복기해볼 때, 실패의 최대 원인은 청와대나 정부핵심에 접근해온 경제관료들과 일부 재벌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경제관료나 재벌들과는 가급적 담을 쌓자는 게 이들의 대체적 생각이라고 한다. 때문에 소통은커녕 이들에게는 접근부터가 쉽지 않다고 적지 않은 현역 경제관료들은 호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 정부 들어 경제부처들이 주도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정책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계적 감세(減稅) 추세와는 다른 작년 7월의 법인세 인상, 청와대 사회수석이 주도했다는 각종 부동산정책들,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 그리고 그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대폭 증원, 근로시간 단축 등이다.

 1위 재벌인 삼성은 또 정부 각 부처로부터 돌아가며 공격을 받고 있다. 그 사유만도 10개가 넘는다. 과거 역대정부에선 대개 용인이 됐거나 문제 삼지 않았던 사안들이다. 또 지난 1년간 국내  대그룹들은 상당수가 검찰수사 선상에 올랐거나 압수수색을 당했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법정구속됐다. 기업 망신주기와 압수수색 등이 반복되면서 멀쩡한 대기업이 거의 없을 정도다. 

물론 이들 ‘강성’들의 뜻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갑질 근절 같은 정책은 아주 잘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또 건강한 나라 발전을 위해선 주기적인 적폐 청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가끔씩 사회 전반을 뒤엎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경제만은 좀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닐까. ‘강성’들의 논리만 앞서고 경제논리가 크게 밀려나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 감소 등 숱한 부작용들을 아직도 쏟아내고 있다.  도소매·음식숙박업의 취업자 수는 5개월째 감소추세다. 음식숙박업종의 사라진 일자리 수만 44만개라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도 비슷하다. 뜻은 좋지만 무리한 강행이 벌써부터 부작용을 쏟아낸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새 일자리 20만개가 생긴다지만 업계는 현장을 너무 모르는 탁상공론이라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 감소가 현실화되면 노사 간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청년실업률은 지난 3월 11.5%로 2년 만에 최고치다. 고용을 창출하고 노동소득을 늘리겠다며 강행한 친노동정책들이 거꾸로 일자리를 줄이고 고용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그동안 한국성장을 이끌어온 제조업은 위기상황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다. 내수부진이나 엄청난 가계부채, 저출산 등도 여전히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기선행지수도 대부분 회원국들이 상승세인데 우리는 9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활력이 안 그래도 자꾸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치논리의 정책들이 계속 강행될 경우 경제는 점점 더 많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현재는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남북대화 등으로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경제가 계속 좋지 않을 경우 지지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헌재나 진념, 윤증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성'들의 벽을 뚫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어떻게든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지었을 것이다. ‘방향과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속도다. 기업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계적으로 충격을 완화해가며 해야 한다'고.  또 '기업인은 성직자가 아니다. 전 세계가 법인세, 상속세 인하로 기업가 정신 살리기가 한창인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경제만은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래도 씨가 안 먹히면 과감히 옷 벗을 사람들이다.

김동연은 외모부터가 모범생 스타일이다. 아주 온화하고 양순해 보인다. 실제 언행도 비슷하다고 한다. '강성'들에 계속 침묵하던 그가 얼마전 처음으로 '속도조절론'을 꺼냈다. 그로선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김동연에게 계속 기대를 걸어볼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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