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운‧조선업계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운사들은 중국 조선사에 발주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조선사들이 워낙 낮은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인데, 문제는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 이를 극복할만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22일 해운‧조선업계에 따르면 폴라리스쉬핑은 최근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산하 상하이외고교조선(SWS)에 벌크선을 발주했다. 발주한 선박은 20만DWT(재화중량톤수)급 선박 1척으로 오는 2020년 인도할 예정이다. 폴라리스쉬핑측은 선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약 5000만 달러(약 533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폴라리스쉬핑 관계자는 "중국 선사측이 제시한 조건이 워낙 좋았던데다 선박 인도 일정 등 여러 조건도 맞아 발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달 정부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뒤 나온 국내 해운사의 첫 중국향 발주다. 특히 현대중공업에 18척의 VLOC(초대형광석운반선)을 발주하는 등 그동안 국내 발주 움직임을 주도해온 폴라리스쉬핑이 돌연 중국 조선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뿐 만이 아니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부정기화물 선사 신성해운도 최근 중국 장쑤성의 대양조선사에 2900 DWT급 일반화물선 3척을 발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장금상선은 SWS와 진하이중공업 등 중국 조선소에 벌크선 4척을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금상선 관계자는 “발주를 검토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최종적으론 무산됐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해운‧조선업계간 상생 분위기가 옅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발주 금액이 큰 것은 아니지만 일감부족이 심각한 국내 조선소의 상황을 고려하면 서운한게 사실”이라며 “다른 선사들도 덩달아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조선소에 발주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中조선사, 가격 앞세워 韓해운사 공략
이처럼 국내 해운사들이 한국 조선사가 아닌 중국 업체에 발주하거나 검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중국 조선사들은 국내 업체에 비해 10% 정도 낮은 금액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들 입장에서도 국내 업체에 발주하고 싶지만 현재의 낮은 운임을 고려하면 발주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제는 국내 조선업체 입장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최선의 방법은 고정비를 낮추는 것이지만 중국 수준까지 임금을 낮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몇년간 조선소의 일감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면 저가 수주에라도 나서고 싶지만 이 또한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조선업체들이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부 선종을 제외하곤 원가 이하의 수주에 대해선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정부가 해운업계에 지원하는 신규 선박 발주 중 벌크선 부문 상당수가 중국 조선소의 일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해운재건 계획이 우리나라 조선소 일감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보다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