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22호 소법정 앞.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 김모씨(48)의 재판이 열린 날, 태극기를 든 중노년 남녀 20여명이 법정 앞 복도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와 한 패거리인 경찰·검찰이 드루킹을 '봐주기 수사'한다", "매크로가 뭔지도 모르는 판사가 재판을 진행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법원 경위가 법정 안이 꽉 찼다며 출입을 제한하자 "뭐가 무서워서 못 들어가게 하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의 소란에도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는 이는 없었다. 사실 그들의 주장은 일리 있을 수 있다. 경찰의 '드루킹 부실 수사' 의혹은 끊이질 않았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달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드루킹이 김경수 의원에게 대부분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김 의원은 거의 읽지조차 않았다"고 말했다가 이와 전면 배치되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자 "제 불찰"이라며 고개 숙인 게 결정적이었다. 경찰이 드루킹의 신병을 확보한 지 한 달이 다 된 지난달 20일에서야 드루킹이 운영한 네이버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등 카페 3곳을 압수수색한 것도 수사 기관의 '늑장 대처' 의혹을 키웠다.
민주 사회에서 권력, 특히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활발하게 이뤄져야 마땅하다. 문제는 태극기 부대의 과격한 언어가 그들 스스로를 고립시켜 왔다는 점이다. 그들이 제아무리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더라도 "문재인 미친 XX"(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를 말하는 순간 그 날은 한없이 무뎌진다. 물론 드루킹 일당과 현 정권을 동일시하는 그들의 주장이 과할 순 있다. 또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은 민간인에 의한 여론 조작 사건이라는 점에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태극기 부대가 과한 주장을 하는 것과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건 극단적 아우성으로 치부되는 건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