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너지시장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사고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본격화된 미국발 셰일 혁명으로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특히 에너지산업은 국제유가의 급변으로 한동안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혼란 상태였고, 수년간의 조정과정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균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국제 에너지시장의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다행히 국내 석유산업은 규모의 경제에 기초한 대외 경쟁력을 활용, 석유제품 수출로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력산업 또한 저유가로 인한 발전비용 감소에 힘입어 수년간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향후 원전이나 석탄 화력과 같은 기존 주력발전원이 갖는 안전성과 환경성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에너지 전환정책이 강력히 추진되며 과거와 다른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에너지 시장 및 산업을 전망하면 △국제 유가 △국내 에너지정책 변화 등을 통해 과거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국제 유가 전망이다. 2014년 국제 유가 대폭락 이후, 국제석유시장은 새로운 균형 상태를 찾기 위한 힘겨룸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을 기반으로 한 비전통 석유자원의 개발로, 세계 최대 자원생산국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전통적 석유자원의 시장지배력 유지를 위해 감산정책으로 버티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는 바닥에서 벗어나 수년간 불안정한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며, 올해 국제 유가도 현재의 배럴당 60달러 전후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원유 수급은 OPEC의 감산과 신흥국의 수요 증가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전망이다.
국제 유가는 두바이 원유가격이 상승하겠지만, 미국 등 비OPEC 국가의 공급 증가 및 누적된 원유 재고로 상승 폭이 제한돼 전년 대비 12% 상승한 배럴당 59.66달러로 전망된다.
세계경제 회복에 따른 석유 수요 증가로 소폭이지만 유가 상승이 전망돼 우리나라의 경제적 측면에서는 우호적인 환경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올해 에너지산업의 변수는 대외 요인보다 국내 요인에서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전환정책' 또는 '3020'으로 대표되는 국내 에너지 정책의 기조 변화는 올해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에너지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원자력발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것'로 요약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목표 및 수단으로 신고리 5·6호기를 제외한 △신규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전력수급 등을 고려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추진한다.
동시에 현재 7%인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0%로 확대한다는 '3020정책'을 병행 추진해 원전의 축소로 감소되는 발전량을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로 대체 공급한다.
이처럼 에너지 전환의 1차 목표연도를 장기적으로 설정한 것은 발전설비의 개체에 그만한 선행기간(lead time)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는 에너지 안전성과 환경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세먼지나 지진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에너지 전환정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국민이 당장의 정책성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책이 추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부터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기존의 원전계획을 취소하고 이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산업진흥을 위한 '3020 정책' 기조가 급하게 마련돼 제반 제도 정비 및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고리 5·6호 원전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한 공론화 과정에서 보듯, 에너지 전환의 총론에는 동의해도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정책목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공고하지 못할 경우, 소기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비부지 확보 △계통안정성 유지 △전기요금 영향 최소화 등 많은 과제가 있다.
정부는 올해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현재 제도 보완이 필요한 것은 기존에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시행 중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다.
현행제도는 △자체 건설 △자체 계약 △현물 △선정 등 4개 시장으로 구성돼 구조가 복잡하고, 전력 구입가격의 변동성이 심해 신규투자의 경제성 확보 차원에서 불확실성이 높다.
또 환경훼손과 관련된 지역주민의 민원 발생 등으로 입지 확보에 곤란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참여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및 금융지원제도가 필요하다.
전력계통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한 선제적 계통보강 조치와 유연성 설비(양수나 가스발전 등) 확대를 위한 정책 도입 역시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은 제도 보완이 적기에 이뤄져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라 △전기요금 상승 △전력계통 불안정성 증가 △부정적 환경 영향 체감도 증가 등 부정적 인식이 커질 경우, 현재의 정책기조에 대한 재검토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를 뒤흔들 사건이 발생할 경우, 에너지 안보 위협 및 전력요금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에너지 전환정책이 본궤도에 오르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다.
에너지 전환정책이 에너지원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각기 다르다.
재생에너지 분야는 보급 확대를 위한 정부 의지가 확고해 투자여건이 크게 개선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과 산업도 존재한다.
이들 지역과 산업도 연착륙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대책이 병행해 마련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시스템 구축이 발전비용 상승을 유발하고, 이는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
안전성과 친환경성이 추가 비용부담 없이 이뤄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런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에너지 가격체계 및 제도 개편이 필수적이다.
특히 전력요금은 향후 발생하는 발전 비용 및 사회적 비용의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관리돼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확대가 가능하고, ICT 기반 에너지 수요관리의 도입도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의 친환경적인 에너지시스템이 자리잡을 수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재생에너지 분야의 신규투자를 뒷받침할 선진 금융제도 도입 등 지원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올해는 에너지 전환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원년이다. 동시에 5년마다 수립되는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체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업계 및 시민사회단체가 각기 자신의 주장을 제기할 것이다. 이런 다양한 목소리를 슬기롭게 수렴해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담아내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