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금이 싸울 때인가

2018-03-2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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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과 금융사의 진흙탕 싸움이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일단락됐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연임됐고 노동이사제 도입은 좌절됐다. 금융사는 완벽하게 승리했지만 당국은 체면을 구겼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공무원 사회에서 '치욕'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니 2라운드에서는 더 정교하고 화려한 무기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쟁점은 채용비리 의혹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불명예 퇴진 하루 만에 '확실하게 검사하겠다'며 먼저 포문을 열었다. 검사 인력과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며 전선(戰線
)도 확대했다. 금융사들도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안으로는 사외이사 등을 통해 방어선을 촘촘히 구축하고 있다. 확전이 될지, 현 단계에서 마무리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이목이 집중된 건 사실이다.

당국과 금융사가 이번처럼 강하게 대립각을 세운 전례는 없다. 우리나라 금융은 막강한 권한을 쥔 관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왔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이번 힘겨루기의 발단은 무엇이고 누구의 의지에 의한 것일까.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 최종구 위원장이 먼저 꺼냈다. 작년 11월 "경쟁할 사람을 제거해 대안이 없도록 만들어 놓고, 자기 혼자(연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 게 사실이라면 최고경영자(CEO)로서 중대한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금감원도 지배구조를 전면 검토하겠다며 힘을 보탰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압박에 김정태 회장은 "전직 임원들이 음해성 소문을 낸다고 들었다. 안타깝다"고 응수하며 총대를 멨다. 짧은 멘트지만 파장은 상당했다. 이후 시나리오는 풍선처럼 커졌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배후설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감정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막장으로 치닫던 싸움은 '사기업 인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통치권자의 발언에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국도 오해를 사지 않겠다며 지배구조 점검을 회장 후보 선출 이후로 미뤘다.

그러나 하나금융은 회장 후보를 결정하고 유일한 사내이사로 김 회장을 선임했다. 금감원에서 '두고 보자'는 기류가 형성된 것도 이때다. 후보 선정을 2주만 늦춰달라는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감원장은 "그 사람들이 당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동시에 지배구조가 아닌 채용비리 의혹을 전면에 내세웠다.

수십 건에 달하는 채용비리 의심 사례를 검찰에 넘기고 금융사를 본격 압박했다. 검찰의 압수수색과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도 시작됐다. 그런데 돌연 금감원장이 사의를 표했다. 과거 하나금융지주 CEO로 근무할 당시 채용청탁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단명 금감원장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한 쪽이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라는 얘기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문제는 한쪽이 죽었지만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나라 금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이 현명한 판단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감정싸움을 접고 금융산업이라는 공통분모만 생각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당국은 이번 정부의 기조인 포용·생산적 금융에 더 집중해야 한다. 소외된 금융 소비자들을 포용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생산적 금융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최고금리 인하, 채무 탕감에서 만족하면 안된다.

케케묵은 규제를 개선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금융정책도 설계해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술에 대한 공무원들의 이해 능력 역시 키워야 한다. 이들의 이해도에 따라 제도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돈의 전쟁'이 한창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예대마진에만 의존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엉뚱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다. 말 그대로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금융산업을 이끄는 두 축이 감정싸움이나 한다는 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령 어느 한 쪽이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을 챙겼다고 하자. 과연 그 전리품이 자랑스러울까.

진행 중인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여기에만 올인한다면 정말 답이 없다. 양쪽 모두 나무가 아닌 숲을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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