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냉정과 열정사이를 노닐던 여인, 사도온(謝道蘊)

2018-03-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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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舌端談屑自霏霏(설단담설자비비) 혀끝에선 막힘 없이 계속 말이 나왔고
隔障從容爲解圍(격장종용위해위) 장막 너머 조용히 막힘을 풀어줬지
林下淸風吹未已(임하청풍취미이) 수풀 아래 맑은 바람 끊임없이 부는데
分飛柳絮政依依(분비류서정의의) 날리는 버들개지 참으로 아스라이
-작자 미상, '사도온'-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인’이라 하면 식상한 표현일까? 하지만 이는 사도온(謝道蘊)을 지칭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말이기도 하다. 그녀는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東晉)의 여인으로 아버지는 장군 사혁(謝奕)이었고, 당시 유명한 재상 사안(謝安)은 그녀의 숙부였다.

사도온은 이른바 ‘금수저’ 출신이었으나 전통시대에 여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신산(辛酸)함 그 자체였다. 출중한 재능을 지녔다면 더욱 그러하다. 논리적 언변과 비범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으며, 당차고 적극적인 기질의 소유자였다. 이는 사족(士族) 남성의 출세 요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과 견준다면 여성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의 1, 2구는 사도온의 ‘언변’에 관한 내용이다. 그녀의 남편은 서법가로 유명했던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응지(王凝之)였다. 어느 날, 시동생 왕헌지가 손님과 열띤 토론을 벌이다 궁색하게 되자 사도온이 푸른 장막을 친 후 그를 대신해서 변론해 주었다고 한다. 시구에서 ‘막힘을 풀어주었다(解圍)’라 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시의 3, 4구는 그녀의 천부적인 문학적 감각에 관한 부분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숙부이자 대문호였던 사안은 집안의 자제들과 함께 문장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시심(詩心)이 발동한 그가 ‘흩날리는 눈’에 비유할 만한 적절한 시구가 무엇일까 문제를 낸다. 조카 호아는 ‘공중에 소금을 뿌리네(撒鹽空中差可擬)’라 하였고, 사도온은 ‘버들개지 바람에 날리는 것만 못하네(未若柳絮因風起)’라 하였다. 이들 가운데 누가 탁월한 비유를 했는가 하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손은(孫恩)의 난을 당해 남편과 아들이 비명횡사하는 아픔을 겪은 지 채 안 되어 그녀 자신도 손은의 손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논리적 무장으로 그의 잔학함을 굴복시켰다고 전한다. 고금에 타고난 자품과 능력이 출중했던 이가 어찌 그녀뿐이었겠는가? 특히 그녀가 인구에 회자되었던 이유는 가슴속 열정과 흔들림 없는 냉철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라 한다면 조금 억울할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노닐기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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