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들어온 음식은 혀의 많은 감각 세포를 자극하는 동시에 냄새는 뇌를 통해 기억과 추억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
이때 우리의 뇌가 기억 하는 것은 음식 맛 뿐만이 아니다. 같이 먹었던 사람, 장소, 시간을 포함해 주변의 이국적인 분위기, 테이블 위에 놓여진 예쁜 냅킨 등은 기억으로 저장되어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오랜 시간 현지의 향취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통하여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지난 겨울,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첫 날이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텅 빈 거리, 연방의회 의사당 방문 예약 실수로 1시간 가량 시간이 남아 근처 어느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먹은 베를린의 명물 커리 부어스트와 맥주 한잔이 줬던 알딸딸함은 여행 도착 첫 날의 필자의 기분, 체온, 피곤함의 무게까지 고스란히 맛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청도 여행 중 식사 때마다 빠짐없이 곁들여 마신 칭다오 맥주는 지금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때의 추억을 다시금 끄집어낸다.
함께 먹었던 생소한 중국 음식들, 청도 맥주 거리의 분위기, 중국인 친구를 이끌고 지도를 보며 식당을 찾아 한참을 걷던 그때가 몇 년 전의 일임에도 말이다.
스페인 론다에 머물 당시 한 레스토랑에서 먹은 해물 파에야는 사진을 볼 때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다.
파에야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로 지역 곳곳에서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론다의 그 레스토랑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맛도 훌륭했지만 유독 친절하게 대해줬던 직원의 미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 때 같이 사진이라도 찍으라며 떠밀던 친구와 지금도 스페인 음식점에서 파에야를 주문할 때면 그 날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는 음식들은 결코 유명 맛집의 대표 메뉴, 비싼 음식, 희귀한 재료들이 그 주인공은 아니다.
같은 곳을 갔더라도 각기 다른 음식을 추억하고,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각기 다른 맛의 이야기가 가미될 수 있다.
필자에게 마드리드의 늦은 오후 골목 풍경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쇼콜라에 찍어먹던 추러스의 여유로움이 가미된 담백한 맛이었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먹은 핫도그는 그 곳을 떠나기 전까지 청어 절임 샌드위치를 찾아 다니다 끝내 맛보지 못한 배낭여행자의 아쉬움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맛이었다.
유독 낯섦이 컸던 벨기에도 브뤼셀의 아침 거리만큼은 오줌싸개 소년 동상을 보러 가기 전 먹었던 큼지막한 와플과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밥을 먹다가 문득 수저를 내려놓고 다시 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어딘가로 가서 느끼게 될 낯선 설렘과 맛을 그리워하며.
/글=서세라 작가 #버터플라이 #청년기자단 #김정인의청년들 #지켄트북스 #청년작가그룹 #지켄트 #세이투어넷 #여행을말하다 #여행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