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미스티’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 고혜란(김남주 분)과 그의 변호인이 된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 그들이 믿었던 사랑의 민낯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이번 작품에서 고준은 고혜란의 첫사랑이자, 모든 인물들의 연결고리가 되는 재영 역을 맡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닮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도 (배우로서) 무명 생활이 길었고 사랑을 이어가기에는 능력이 없어서 버림받기도 했었거든요. 재영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죠. 하지만 저는 혼자 가슴앓이하는 타입이라서 이후 재영이 복수를 하고, 혜란을 못살게 구는 방식은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하하하.”
고준에게 재영은 “알다가도 모를 남자”였다. 아귀가 잘 맞물린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맞지 않는 조각처럼 불편했다. 고준은 이재영에 관해 “저의 과거, 현재가 뒤섞인 인물” 같다며 아직도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이재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준은 찬찬히 이재영의 삶을 떠올리는 가 싶더니 “고혜란과 재회하게 된 뒤”라고 말을 꺼냈다. 사랑을 치욕으로 되갚는 순간을 떠올릴 듯싶었다.
“고혜란과 재회한 뒤, 그를 자극하는 장면은 어쩐지 이해가 잘 안 가더라고요. 대사도 입에 잘 안 붙는 것 같고요. 어떻게 하면 이재영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한참 고민 끝에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고 그와 닮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이재영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했어요.”
고준은 “가장 먼저, 이재영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혜란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재영의 중심에는 고혜란이 있었고, 그를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위함이었다.
“제가 집중했던 건, 소유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의 외피는 많은 여자를 소유하는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늘 어떤 갈증을 느끼고 있거든요. 많은 사람 중에서도 오직 고혜란만 바라보는 것. 하지만 그게 ‘금기된 사랑’이라는 것에 집중해 연기 하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고혜란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그의 남편인 강태욱마저 싫어졌다고. 그는 “고혜란을 사랑하려고 하다 보니 강태욱마저 밉고, 싫어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엄청난 질투심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갖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있는 남자에 대한 질투심이 폭발했어요. 너무도 밉고, 싫더라고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떨어트리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고혜란마저도 미워 보이더라고요. 이런 게 애증이구나 했죠.”
언제나 “미련하고, 아프게” 캐릭터를 겪으며 인물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고준은 ‘미스티’ 재영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두고 감독님, 스태프가 원하는 쪽으로 맞추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첫 멜로드라마인데다가 낯선 재영의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기존에 제가 하던 연기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저는 정말 ‘무식하게’ 연기하는 편인데, 재영은 첫 멜로 장르이자 드라마기 때문에 감독님과 스태프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했어요. 제게도 ‘도전’이었죠. 낯선 재영이라는 인물을 매끄럽게 표현하고자 다른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고준은 ‘미스티’ 모완일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과 함께 재영의 내면부터 외면까지 섬세하게 만들어갔다.
“재영의 외모를 만들 때도 많은 고민이 있었죠. 제작진은 재영의 롤모델로 추성훈 씨를 언급했어요. 교포 같은 느낌을 원하신 것 같아요. 작품을 준비할 때도, 추성훈 씨의 외형적 느낌을 추구하려고 했어요. 교포의 특징이나 제스처, 미소, 여유 같은 것들을 (캐릭터에) 입히고 싶었어요.”
신기한 일이었다. 질투, 자격지심, 애증, 분노로 똘똘 뭉친 재영이었지만 카메라가 꺼지고 나면 속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쉽게 캐릭터를 입고, 벗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의 이야기를 반영해 캐릭터를 만들고 그를 이해하면서 고준은 또 다른 연기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배우들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김남주 선배님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솔선수범해서 (분위기를) 풀어주세요. 장난도 많이 치고, 힘을 북돋아 주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되었죠. 전혜진 선배님의 경우는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할까요? 음료수 같은 것을 사주면서도 선배님이 사셨다는 걸 모르게 하세요. 알게 모르게 현장을 돌보고, 후배들을 챙겨주시죠. 지진희 선배님은 그냥 딱 보기에도 너무도 친절하고 따듯해 보여요. 하하하. 격정 멜로고 깊은 감정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가 엄숙한데, 베테랑 선배님들이 현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려고 많이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런 부분에 동요해 같이 파이팅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미스티’로 지독한 사랑을 경험한 고준은 드라마 종영 후, 영화 ‘바람바람바람’과 ‘변산’으로 또 한 번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바람바람바람’(감독 이병헌)과 ‘변산’(감독 이준익)은 ‘미스티’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조금 더 친근하고, 따듯한 이미지로 관객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변산’에 대한 기대가 커요. 개인적으로 ‘변산’을 통해 많은 힐링을 받았거든요. 이준익 감독님을 만나 틀어진 정서가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성장을 경험했다고 할까요? 감독님을 비롯해 캐릭터 역시 따듯한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어요.”
약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며, 고준에게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어떤 것을 이뤄 오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짧은 고민 뒤 “편안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싶다”며 웃었다. 그간 공들여 푼 문제의 답인 듯했다.
“이준익 감독님을 만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 더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 되어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