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숨겨진 지한파…60세부터 '진짜 관운' 트였다

2018-0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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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리잔수(2)

리잔수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한 사내가 절벽에서 천하를 굽어보니 산들이 봉우리를 이루며 몰려온다. 한줄기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고 지나가면 독수리가 창공을 찌르듯 웅비한다." <리잔수(栗戰書, 1950~) 헤이룽장성 성장 재직때 쓴 시구>

""당중앙이 나를 구이저우(貴州)로 보냈으니, 나는 구이저우 사람이다. 구이저우에서 나는 첫째 좋은 학생, 둘째 좋은 공복, 셋째 좋은 반장이 되겠다." <2010년 8월10일 리잔수 구이저우 당서기 취임사 中>

◆중국의 세대별 지역개발 주력방향에 맞춘 리잔수의 스펙

지그재그 또는 역(逆)Z형이라 할까. 찬란한 중화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은 팽창과 수렴을 반복하며 지역개발전략과 대외정책의 주력방향을 연계해 전환시키는 특유의 궤적을 보여 왔다.
 

중국의 세대별 팽창 주력방향[그래픽=강효백 교수 제공]


제1세대 마오쩌둥은 서남방 확장에, 제2세대 덩샤오핑은 동남방 진출에, 제3세대 장쩌민은 서북방 개발에, 제4세대 후진타오는 동북방 진출에 주력했다면, 현 제5세대 시진핑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신실크로드 전략)의 세계 5대양 6대주 전방위로 나아가고 있다.

40년 지방행정개혁가 리잔수의 스펙도 이러한 중앙정부의 지역개발전략 주력 방향 및 궤도와 맞춰져 있다. 현 19기 정치국원 25명(상무위원 7명 포함) 중 농촌지역 현서기, 시 서기, 성장, 성서기의 단계를 모두 밟은 지도자는 시진핑 주석과 그의 최측근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격, 3월 취임 예정)밖에 없다. 시 주석과 리 상무위원장 등 둘 다 관직생활을 허베이성(1)*의 농촌지역 현 서기에서 출발했다. 단, 이후 전자는 주로 번화한 동부 연해지역에, 후자는 주로 낙후한 서부와 동북지역에서 근무했다는 게 좀 다른 점이다.

리잔수는 고향 허베이에서 관직의 잔뼈가 굵었다. 1972년 그의 나이 22세에 허베이의 성도 스좌장(石家莊)지역 상업국 판공실에서 관직생활을 시작해 33세에 현 서기, 36세 공산주의청년단 허베이성 서기, 43세에서 허베이성 상무위원겸 비서장(사무국장)등을 역임, 1998년 48세때 산시(陝西)성(2)* 상무위원으로 전근할 때까지 무려 26년간을 허베이에서 근무했다.

1998년 3월 출범한 장쩌민 제2기 정부는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를 초래한 선부론(先富論)의 폐혜를 바로잡기 위해, 지역간 균형발전의 신균부론(新均富論)에 입각한 서부대개발을 내세웠다. 서부대개발의 핵심은 낙후한 서북지역의 개발과 소수밀접지역의 국경지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허베이에서 청렴하고 성실하고, 탁월한 업무추진 능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리잔수는 산시성 당 상무위원과 농촌업무영도 소조 부조장에 투입됐다.

2000년말 산시성 벽촌지역 농민 한명이 난동자로 오해받아 파출소에 끌려가 토굴 속에 엿새간 불법감금된 사건이 발생했다. 리잔수 조직부장은 직접 피해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극진한 공개사과와 책임자 처벌 배상조치를 취해 민심을 얻었다.

2001년 3월 리잔수는 그의 맹우(盟友), 시진핑(당시 푸젠성 당서기)과 시의 모친 치신(齊心), 여동생 시차오차오(習橋橋)와 함께 시의 부친 '시중쉰(習仲勳)문선' 출판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3)*

이듬해 2002년 1월 리잔수는 산시성의 성도이자 시진핑의 고향, 시안시 당서기로 승진했다. 당시 시안은 13개 왕조의 수도(4)*이자 중국 서부 중심도시라는 격에 걸맞지 않게 낙후돼 있었다. 리잔수는 고층건물 몇 개가 달동네 불량주택의 바다에 섬처럼 떠 있던, 황토색만 그윽했던 고도(古都) 시안에서 당당하고도 격조 높은 현대문명의 꽃을 피워나갔다.

2003년 3월 당시 신임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장쩌민 시대의 서북에서 동북으로 방향을 확 틀었다. 후진타오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건설이라는 균형발전전략의 틀을 수립하고 동북3성의 인프라를 개발하는 동북진흥전략으로 내놓았다. 2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재직기간이지만 역대 시안시 수장 중에서 으뜸 수장으로 칭송이 자자한 리잔수를 동북3성 중 최북방 헤이룽장(黑龍江)(5)*부성장으로 투입됐다.

◆ 리잔수의 진짜 관운은 60세부터

2008년 3월 당시 리잔수 중앙후보위원이자 헤이룽장 성장(성 제2인자)은 국영중앙(CC)TV와의 기자회견시 몇 년 후에 은퇴해서 자선사업에 몰두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58세의 중앙후보위원이 중앙위원 그 이상의 높은 자리를 꿈꾸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듯 리잔수의 진짜 관운은 60부터였을까? 그의 나이 만 60세 되던 2010년 8월, 중국 고위 정·관계 인사에 매우 보기 드문 승진인사가 돌연 발생했다. 중앙후보위원이었던 리잔수가 통상 중앙위원이 맡아온 구이저우(貴州)성(6)* 서기(성 1인자)로 승진했던 것이다.

1인자 성 서기와 2인자 성장의 당직위는 각각 중앙위원(장관급), 중앙후보위원(차관급)이 상례(7)*. 그런데 리잔수의 이례적 승진 배경에는 차세대 최고지도자로 낙점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있었다.

서남부의 낙후한 구이저우성의 연로한 수장 리잔수는 중앙의 재정적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빈곤 구제 및 교육 개선 사업에 역점을 뒀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변방의 행정관료로 떠돌던 '이무기' 같던 리잔수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관운 대역전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1년 5월8~11일 시진핑 당시 부주석이 구이저우 시찰을 내려왔던 3박 4일이었다. 그 3박 4일 동안 리잔수는 열일을 제쳐두고 차기 최고자를 밀착 수행하고 오랜 동지와 독대밀담을 나눴다.

리잔수는 2012년 3월 시진핑 집권을 앞두고 중난하이(中南海)의 안살림을 관장하는 중앙판공청의 부주임(장관급)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리고 두 달도 채 안돼 중앙판공청 주임(부총리급, 대통령 비서실장격)으로 승진했다.그의 전임자 링지화(令計劃)가 아들의 페라리 나체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휘말려 좌천됐기 때문이다. 전임자의 불행은 후임자의 행운인가.

◆리잔수는 숨겨진 진짜 지한파?

지난해 10월 25일 중국 공산당 권력 3강(强)으로 등극한 리잔수는 숨은 진짜 지한파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당시 일개 지방 행정수장이던 리잔수가 베이징의 중앙무대에 최초로 두각을 나타낸 계기는 2002년 1월 18일 시안시 당서기 자격으로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한·중경제협력세미나'에 참석해 '중국시안 서부최가’ (中國西安, 西部最佳, 중국 시안이 서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뜻)기치를 내건 때부터이기에.

"한국 기업들, 중국서부 시안에 많이 투자해 주세요."

2003년 3월 28일 대규모의 시안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리잔수 시안시 당서기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투자설명회를 갖고 한국 기업들의 하이테크 산업단지 투자를 호소했다.

"한국인들의 도전정신과 창의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06년 9월 25일 리잔수 당시 헤이룽장 상무부성장은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3년 6개월 전 방한 시의 인상을 '도전'과 '창의'라는 두 단어로 요약했다. '대장금'등 한국 TV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한류에도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덧붙여 헤이룽장성의 자매결연 지자체인 충청북도의 인구·면적·연혁·산업현황 등을 한 자릿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유일한 내륙도(道)가 바다가 없는 헤이롱장성과의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게 아닌지 하고 반문하기도 해 한국 특파원들을 놀라게 했다.

리잔수는 그해 10월 31일 서울에서 열리는 헤이룽장성 홍보주간 행사에 600여 명의 대규모 투자유치단을 파견했다. 2009년 10월 8일 헤이룽장성을 방문한 전 국토통일원 장관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이 이끄는 정·재계 인사들과 장시간 면담을 가졌다.

2014년 7월 3~4일 시진핑 주석의 방한 당시 리잔수는 항상 시 주석의 왼편에서 수행해 내외신 기자단 사이에서 ‘좌(左) 잔수(당시 중앙판공청 주임), 우(右)후닝(왕후닝, 당시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통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한·중 정상회담인 지난 2017년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리잔수는 시 주석의 왼편에 배석해 한국측 대표단과의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주석

(1)*허베이성(河北省 면적18.8만㎢, 인구 7185만명)은 황허(黃河) 북쪽에 위치하였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중국 수도 베이징을 둘러싼 성이다. 우리나라 경기지역에 해당하는 허베이성은 실제로 경기도의 자매결연 지자체이기도 하다.

(2)*산시성(陝西省 면적 20만6000㎢, 인구 3835만명)은 중국 서북부의 중심 대성으로 우리나라 경상북도 자매결연 성이기도 하다.

(3)*2002년 5월 24일 시중쉰이 사망하자 리잔수는 특별조전을 보냈고, 2003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중쉰 혁명생애'의 좌담회에 참가해 시진핑과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었다.

(4)*시안(西安)은 서주(西周),진(秦),전한(前汉),신(新), 후한(後汉), 서진(西晋), 전조(前赵), 전진(前秦)、후진(後秦),서위(西魏),북주(北周)、수(隋), 당(唐) 등 13개 왕조의 수도였음.

(5)*한반도 면적의 2배이상인 면적 47만3000㎢, 인구3831만명, 우리나라의 충청북도의 자매결연 성

(6)*면적 17만6000㎢, 3528만명, 충청남도 자매결연 성

(7)*중국 정치국상무위원은 총리급 이상, 정치국원은 부총리급 이상, 중앙위원은 장관급이상, 중앙위후보위원은 차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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