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전용관인 부산의 ‘국도예술관’이 12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1월 31일 영업을 종료 한다.
부산 국도예술관은 2005년에 중구에서 개관해 다음 해인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예술영화관을 선정됐다. 그 후 2008년 현 위치인 남구 대연동으로 이전해 재개관 하면서 10년 동안 부산의 독립·예술 영화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부산독립영화제 상영관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남포동 시절, ‘국도극장’으로는 부산영화제 초기 상영관이기도 했다.
◇10여 년간 경영난 누적... 대기업 진출,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으로 지원금도 ‘끊겨’
그러나 지난 15일 국도예술관 공식 카페는 공지를 통해 "2018년 1월 31일까지 재계약 연장이 안되며,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고, 그 날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10여 년 간 누적돼 온 운영난이 큰 몫을 차지했다. 또한 영진위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시행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폐지하고, 2015년 시행한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영화계와 영진위의 배급 문제 갈등으로 지원금마저 중단돼, 자금난은 가중됐다.
게다가, 대기업 독립·예술영화 전용관과 부산영화의 전당 독립영화 전용관이 생김으로써, 140석 규모인 국도예술관은 관객 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관객을 위한 극장” 영업 종료. “미안하고 감사”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마지막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동안 관객을 위한 극장으로 버텨왔는데, 관객들의 기억 속엔 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웃으며 안녕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객을 위한 극장으로 운영해 왔다”며, “관객들에게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정 프로그래머는 “예술영화전용관의 존재는 공공재로서 영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 상업적 이윤만 기준해 평가하는 정부와 투쟁할 때도 관객과 함께 했다. 경영난을 겪으면서 버틴 것도 관객이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 프로그래머는 국도예술관이 “폐관하는 게 아니라, 영업종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든지 재개관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영화계 일제히 아쉬움 ‘토로’
지난 1월 18일 이곳에서 “파란입이 달린 얼굴”이라는 영화를 개봉한 김수정 감독도 국도예술관 영업종료 소식을 접하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감독은 “국도예술관이 그동안 한국 독립·영화전용관으로서 우리 같은 힘이 적은 감독들에게는 희망이었으며, 한 줄기 빛이었다. 영화를 제작하고도 상영할 수가 없을 때, 그리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 때, 선뜻 자리를 내준 게 바로 국도예술관이다. 어쩌면 국도예술관이 접한 상황이 우리나라 독립·예술 영화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1인 영화사 등 대부분의 독립·예술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정부도 교체되고, 영진위도 새롭게 변화를 꾀하는 만큼, 더 이상의 블랙리스트가 없는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시 “적극 개입할 수 없어, 아쉬움”, 영진위 “지원책 강구하겠다”
부산시도 국도예술관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재개관을 위한 지원을 나섰으나, 지원 관련 근거와 타 극장과의 형평성 논란 여지가 있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영상콘텐츠산업과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부터 국도예술관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했다. 건물주와 예술관 대표 등과 수차례 면담을 통해, 방법을 강구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도예술관 이전을 놓고도 방문, 상담 등을 실시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국도예술관 영업종료에 대해 부산시 입장을 밝혔다.
부산시에서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8조(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에 따라 청소년 관객보호, 영화예술의 확산 등을 위해 영화의전당 3개소를 예술영화관으로 지정, 운영하고 있으며, 독립영화 및 단편영화 등 다양성 영화 지원을 위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국도예술관 같이 민간이 운영하는 상영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필요시 독립·예술 영화관으로 활용 가능한 공공시설 등을 면밀히 조사해, 관련 영화관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적으로는 예술영화관이 65개소이며, 부산은 현재 아트씨어터 씨앤씨, 국도예술관, 영화의전당(시네마테크관, 소극장, 인디플러스), 롯데시네마(센텀시티점, 광복점, 오투점), cgv(서면, 센텀시티) 등 총 10곳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전용영화관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조승래 의원이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일부가 개정될 예정으로, 부산에서도 독립·예술영화관이 약 10여 개 개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약 20여 개 가량의 전용극장이 설립될 전망이다.
영화인들은 “대기업 직영상영관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마련할 경우 소규모로 운영하는 전용관들은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홍보, 마케팅은 물론, 시설, 서비스에서 대기업 직영상영관을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영진위도 매년 독립영화전용관에 임차료, 시설개보수, 프로그램 기획 및 홍보비, 기획전 개최비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영진위 관계자는 "최근 한국영화 미래를 놓고 여러 분야에 걸쳐 논의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방향을 결정해 독립예술영화관들에 도움이 될 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상영관을 더 늘려야 한다. 그러나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상영시간, 일 수 등에서 불이익이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은 이상, 악순환은 되풀이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국도예술관은 잠시 영업을 종료하지만, 관객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 전용 상영관을 더 늘리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지만,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용관에 대한 회생 지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하며, 한국 영화 발전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