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역지사지(易地思之)

2018-01-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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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까마귀는 모든 새가 검다 믿고
백로는 희지 않은 다른 새가 의아하지
흰 새 검은 새 서로들 제가 옳다 하니
하늘도 그들의 송사(訟事)에 싫증나리
烏信百鳥黑(오신백조흑) 鷺訝他不白(노아타불백)
白黑各自是(백흑각자시) 天應厭訟獄(천응염송옥)
- 박지원(朴趾源·1737∼1805)

내 말같이, 내 행동같이, 내 마음같이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 믿는 것은 착각이요 편견(偏見)이다.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경험과 나의 생각에만 집착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나’라는 울타리에 가두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보지 못하고 틀리다며 우기다 보면 갈등이 생겨나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것을 틀리다고 우기는 것은 독선(獨善)이자, 심하게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편견과 독선의 폐해는 가까운 우리 역사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나와 다른 상대를 배척하는 사이, 나라는 남북(南北)으로 동서(東西)로 갈라지고,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가 반목(反目)하고, 남자와 여자가 대결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에는 나와 다른 사람을 혐오하다 못해 ‘○○충(蟲)’이라 부르며 온갖 신종 벌레들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와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벌레’라면, 그 누군가와 다른 나도 그 누군가에게 ‘벌레’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일이다. 역지사지하다 보면 나와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싹틀 것이고, 흑(黑)이든 백(白)이든 빨강이든 파랑이든 노랑이든 화해하고 공존하는 길도 열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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