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래한글의 페이지 위에서 어떤 이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탄생시켰을 것이고, 어떤 이는 자신의 첫 학술 논문을 써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자유로이 주조하는 활판이 되어 온 아래한글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만큼 아래한글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워드프로세서 그 이상의 위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로 산 노트북의 ‘아래한글 2018버전’으로 글을 쓰다가 무척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운 경험을 했다. 한자변환 기능에서, 고려(高麗)를 한자로 변환하고자 한자변환 키를 눌렀지만, 높을 고(高)에 고울 려(麗)를 쓰는 '고려'의 한자어는 변환 목록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이랴. 전봉준·김좌진·신채호·이봉창등 대다수 애국지사는 한자변환이 안되는데 을사오적인 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박제순(朴齊純) 등 친일매국노는 한자변환된다.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병조약’, '한일합방', ‘황국’, '신민’, ‘내선일체’ 등 일본식 용어는 한자변환되나 ‘을사늑약’, ‘한일병탄’, ‘일제침략’,‘불령선인’은 안 된다.
또한 '부사'를 한자변환하면 17개의 ‘부사’ 중 일본 '후지산(富士山)'의 '富士'가 아래한글에 맨 먼저 뜬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의 고유명사들이 변환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거의 모르거나 소수의 전문가만이 쓸 만한 일본의 고유명사는 잘만 변환되는데 반해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18년 최신 버전에서는 변환되지 않는 상기의 단어들이 2010년 버전에서는 잘 변환됐다는 것이다. 혹시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시점과 맞물려 친일매국 워드로 개악된 것은 아닐까?
'한글과 컴퓨터' 공식 사이트에서 설명된 아래 한글의 한재 변환 매커니즘은 이렇다. '아래한글'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한자 단어 사전에는 16만 개 이상의 한자 단어가 등록되어 있고, '한자로 바꾸기'를 실행했을 때, 기본 한자 사전에서 검색된 한자어가 변환 목록에 뜨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기본 한자 사전에 등록되었다가 삭제된 것이 아닌가. 의심의 농도는 짙어질 수 밖에 없다. 일본으로의 진출에 염두를 둔 것인지, 일본 지분이 유입되어 일본 정서에 맞추기 위한 물밑 작업인가? 합리적 의심이 들어 한글과 컴퓨터의 기업유형을 살펴보다 필자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기업 유형란에 표기된 ‘외국인투자기업(일본)’이 눈에 확 띈 것이다. 한국의 대표 워드프로세서 아래한글의 '한글과 컴퓨터'가 일본이 투자한 외국인투자기업이라니.
21세기 '매판자본', '매국기업' 논란이 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일본자본의 문화침략·민족문자 지배를 허용한 친일·매국·부패 현행범은 누구일까? 어쩌면 위와 같은 '아래한글'의 죄책은 사석에서 '한국민은 개 돼지'라 말해서 파면당한 고위공직자 그것보다 100배 더 무겁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거대담론(?)’은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훨씬 더 빈번하게 사용하는 단어들은 변환되지 않고 일본에서 훨씬 빈번하게 쓰일 단어들이 변환된다는 것이 우선 불편하다. 그리고 자존심 상한다.
'국민 워드프로세서'라는 자격과 위상을 가지고 만약 의도적으로 ‘일본’은 단독으로 뜨게 하는 반면 ‘한국’을 맨 말석에 처박아두고 , ‘이완용’ 등 친일매국노들의 이름은 뜨게 하고 ‘안중근’등 항일애국지사는 누락시켰다면 이는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무엇보다 친일과 반일이라는 프레임으로 보지 않아도 '편리성'이라는 한자변환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음은 물론이다.
브랜드 충성도가 하늘을 찌르는, 아래한글 1.0버전부터 근 30년간을 아래 한글을 사용해온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평생 글로 먹고 사는 한국인 지식인으로서 ‘일본 아래한글’로서는 살 수 없다. '한글과 컴퓨터'에 충분한 해명과 시정조치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