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남북단일팀 추진 소식을 들은 세라 머레이(캐나다) 여자 아이스하키 한국대표팀 감독의 외마디 탄식이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땀과 눈물을 흘린 사령탑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수년간 경색된 남북 관계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평화올림픽’ 바람이 역풍을 맞았다. 과정이 생략된 밀어붙이기식 일방통행 행정 탓에 여론이 시끄럽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대감에 대한 허탈함이다.
남북은 지난 1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차관급 실무회의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결과물이다. 지난 9일 고위급 회담에서 단일팀 구성 논의를 시작한 뒤 불과 8일 만에 뜻을 모았다. 정부는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이라며 큰 의미를 뒀다.
그런데 이번 평창의 단일팀은 뜨거운 감동 대신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회를 눈앞에 두고 우리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의견을 무시한 채 국가대표팀 구성을 바꾸라는 비상식적인 통보에 대한 분노다. 캐나다 국적의 머레이 감독조차 “우리 선수들을 먼저 챙기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합니다’라는 외침에 동의하는 글이 수천 개 올라왔다. 조국에서 열리는 사상 첫 동계올림픽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선수들이 4년간 흘려온 땀이 정치적인 논리로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공정에 대한 비판 목소리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우리 측 선수단의 피해가 없도록 충분히 논의했다”며 확대 엔트리 방안과 최종 선수선발권의 확보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단일팀에 한정된 확대 엔트리는 공정한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 또 머레이 감독의 선수선발권에 대한 권리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단체경기의 특성상 팀워크의 분란만 조장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은 “아이스하키는 2분 간격으로 교체되는 특성이 있어 선수들이 출전을 못 하거나 배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세계랭킹 22위, 북한이 25위인데, 기량이 빼어난 북한 선수를 섞는 거라 큰 피해 의식 없이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올림픽 시작도 전에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남북단일팀 결성을 합의한 당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진천선수촌을 찾았다. 아이스하키 선수단을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고, 훈련 도중 힘들어 눈물을 흘리는 선수를 위해선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직접 닦아 주기도 했다.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눈물도 닦였을까. 이 선수들은 VIP 방문으로 당초 훈련 일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진천선수촌에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