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 출범기획] 세계 6위 수출국…法을 수출하면 망할 겁니다

2018-01-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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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P 조사결과 1점 만점에 0.73

부패 항목, 요르단보다 낮은 수준

사법제도 '제대로' 개혁해야 신뢰 회복

문무일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년다짐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순위 11위, 수출 6위의 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법치 수준에 대한 국제 지수는 매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세계은행과 미국의 법조 관련 비영리법인 '세계 사법정의 프로젝트(WJP·The World Justice Project)'가 공개한 '법질서 지수(Rule of Law Index)'는 우리 사회 전반의 공적 질서가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법 질서 지수가 낮다는 건 곧,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정치·경제·사회적 무관심은 물론 갈등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인 만큼 법질서 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법질서 지수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또한, 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7%(2014년 기준)로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로 최하위권이다. OECD 회원국의 사법제도 신뢰도는 54%다. 한국보다 사법제도 신뢰도가 낮은 국가는 콜롬비아(26%), 칠레(19%), 우크라이나(12%) 등 3개국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이 자국의 사법제도를 가장 믿는 나라인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신뢰도가 83%에 육박했다.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뿌리 깊은 불신이 수치에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법질서 지수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WJP가 2016년 공개한 법질서 지수에서 한국은 평가점수 1점 만점에 0.73점으로 113개국 중 19위를 기록했다. 전년(2015년) 대비 8단계나 떨어졌으며, 최신 평가 기준을 적용한 2014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2014년에는 0.77점으로 99개국 중 14위, 지난해에는 0.79점으로 102개국 중 11위였다.

WJP는 민·형사 사법정의, 부패, 기본권, 법 집행 등 8개 항목에 대해 국가별 점수를 산출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 권력 견제, 부패, 정부 개방성 등에서 0.7점에 못 미치는 등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부패 항목은 0.65점으로 35위에 그쳐 칠레(25위), 요르단(33위)보다 낮았다. 반면 민사 사법정의, 질서와 안전 등에서는 0.8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WJP가 매긴 점수는 OECD가 발표하는 사법 신뢰도, 세계은행이 내놓는 계약분쟁 해결 평가 등과 함께 한 나라의 법치 수준을 나타내는 권위 있는 지표로 꼽히며, 이 수치는 OECD의 '한눈에 보는 정부 2017' 보고서에도 기록됐다.
 

'세계 사법정의 프로젝트(WJP·The World Justice Project)'가 공개한 '법 질서 지수(Rule of Law Index)'. [사진=WJP]


법학 전문가들은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우려했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처벌을 안 받는다는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부조리가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단적인 예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는 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등 각종 불법 의혹이 쏟아진다. '인사 5대 원칙'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조차 각종 불법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청문회 단골 의혹인 위장전입은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치부되지만, 최근 10년간 위장전입으로 처벌받은 국민은 5000명이 넘는다. 검찰권 행사와 재판도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에 따라 반대 정파에 칼을 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법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법 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학벌, 출신, 지위, 재력 등과 상관없이 같은 법률을 적용받는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일석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는 7일 본지에 "법규가 생활 속에서 실천되도록 하려면 공평하고 공정한 법 집행은 필수"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에서 국민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입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 정권에선 이것을 해도 된다고 하다가, 다음 정권에서는 안 된다고 하면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성우 성균관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반부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면서 "국가는 법질서가 엄정하게 지켜지고 경제가 활성화됐을 때 흥한다. 반대로 부패는 망조의 상징이다.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요소인 만큼 사법제도의 개혁, 국민과 소통을 통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질서 확립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정권에서 정권 초기에는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했지만, 적폐청산·부패척결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정기관 권한만 강화되고 정권 말기로 가면 오히려 법질서 지수가 떨어지고 부패도가 높아진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질서와 체계는 우리 사회를 투명하고 반부패적으로 만드는 사회적 간접자본이므로 선진국 수준에 걸맞게 국제적인 법학 트렌드를 꾸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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