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많은 파괴와 학살을 치른 몽골의 정복전쟁은 평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팍스 몽골리카(Pax-Mongolica)라 부르는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온 것이다. 팍스 몽골리카는 몽골을 타타르라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팍스 타타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1세기에서 2세기에 이르는 로마의 평화 기간에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말을 붙인 것처럼 서구학자들이 몽골에 의한 평화라는 의미로 붙인 말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단일 지배체제가 등장했으니 그렇게 부를 만 했다. 당시 세계의 절반 이상이 몽골제국이라는 한 지배체제 아래 놓이면서 그 동안 막혔던 길이 뚫리고 세계의 간격이 좁혀졌다.
▶ 중동지역에서 멈춘 서진(西進)
사실상 몽골의 서진(西進)이 마지막으로 멈춘 것이 바로 중동 지역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대를 다소 거슬러 올라가기는 하지만 훌레구 울루스(Hulagu Ulus), 즉 일 한국(Il Khanate)이라 불리는 중동의 몽골제국이 이 지역을 어떻게 장악하고 다스렸는지 살펴봐야 한다.
▶ 풍전등화(風前燈火) 바그다드
하지만 5백 년 동안 37명의 칼리프로 이어져 온 이 왕조는 자칫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운명에 처해 있었다.
▶ "무기를 잡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대는 칭기스칸 이래 몽골군이 세상에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줬는지 알 것이다. 영원한 하늘의 은총에 따라 호레즘의 샤를 비롯한 여러 왕조의 왕들에게 어떤 굴욕이 덮쳤던가? 그러한 힘과 권력을 가진 우리가 이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대항하기 위해 무기를 잡지 않도록 조심하라!"
▶ 현실과 괴리된 허세 부린 칼리프
무스타심은 전임자들이 몇 차례의 외침(外侵)을 견뎌냈듯이 자신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훌레구의 경고를 무시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세를 부렸다.
"이제 겨우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그리고 열흘 성공을 축하해 축배를 든, 모든 세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여! 너는 동쪽에서 마그레브까지 알라의 모든 숭배자들은 국왕이든 거지든 내 조정의 노예이며 내가 그들에게 소집을 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마그레브란 7세기 무슬림이 정복했던 지중해에 연해있는 북아프리카지역, 즉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 등을 말한다. 당시 힘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형식상 칼리프가 모든 무슬림의 우두머리였으니 무슬림 땅의 군대가 모두 자신의 군대라는 무스타심의 주장은 옳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압바스 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칼리프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바그다드의 동쪽 지역은 이미 대부분 몽골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고 서쪽의 시리아와 이집트도 꼼짝하지 않으려 했다.
▶ 순식간에 함락된 바그다드
몽골군이 투석기를 통해 성안으로 돌멩이를 퍼부으면서 성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뒤늦게 칼리프는 네스토리우스교 대주교와 시아파 교도를 사신으로 보내 몽골인들을 달래려 했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바그다드는 동쪽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순식간에 몽골군에게 장악됐다. 바그다드는 이렇다 할 전투도 한번 치르지 못한 채 함락된 것이다.
▶ 대량학살과 파괴 뒤따라
뒤이어 바그다드는 대량 학살에 맡겨졌다. 수많은 주민들이 학살되고 도시 곳곳이 파괴되고 불에 탔다. 몽골군은 특히 이슬람사원들을 불태우고 아바스 왕조의 무덤까지 파괴했다. 이 때 학살된 사람이 80만이나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당시 바그다드의 인구 자체가 그만큼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과장이다. 10만이라는 주장과 20만이라는 주장도 있는 것을 보면 아무튼 엄청난 사람이 살해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 폐허로 변한 에덴동산의 땅
구약성서에 기록된 에덴동산이 있고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 발생지가 폐허의 땅으로 변한 것이다. 노아의 홍수가 덮쳤을 때 노아의 세 아들은 방주를 타고 터키북부 지역까지 흘러가 세계 여러 인종의 뿌리가 됐다고 하지만 몽골이 몰고 온 재앙에서는 새로운 역사의 계기를 만들 아무 것도 남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