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해결을 빌미 삼아 한국과 북한을 상대로 투트랙 외교전에 나선 러시아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가 다소 복잡해 보인다.
겉으로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자칫 북핵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읽힌다.
지난 26일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하원 대표단은 다음달 1일까지 머물며 북한 노동당 및 최고인민회의 인사들과 만나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원 대표단이 방북한 날 러시아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고르 모르굴로프 외교부 아태차관은 한국을 찾았다. 모르굴로프 차관은 전날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했다.
러시아가 남북 동시 접촉에 나선 것은 한반도 비핵화 이슈를 지렛대 삼아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 현 시점이 외교전에 나설 적기로 판단한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던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한 직후 시작된 러시아의 행보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평(사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와의 접촉을 통해 북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친구로서 (북핵 포기를) 권고할 만한 역량이 있다"고 논평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을 용인할 수 없지만 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한다"며 "양국 공히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도발 및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일본이 중국에 대북 추가 제재를 요구하며 책임론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는 기대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북한과 러시아 관계가 밀접해지는 게 '차이나 패싱'으로 해석되는 측면에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환구시보는 "외신들은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한다면 중국이 질투할 것이라고 보도한다"며 "중국인은 그렇게 도량이 좁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독점하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이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며 "정치 문외한의 수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중국이 관영 매체를 통해 이같은 격앙된 반응을 내놓은 것은 북·중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환구시보는 "한·미·일 언론 중 일부는 북·중 관계가 대립으로 치닫는 조짐을 찾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중국 외교부는 한반도 문제를 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