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NIS)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설립목적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비슷했지만 설립 56년이 지난 지금 평판은 정반대다. 수장이 권력자의 입맛대로 휘둘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장 잔혹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의 모태는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다. 중정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미국 CIA를 본떠 만들었다. 초대 중정부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맡았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 중정부장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인물은 김재규 전 부장이다. 그는 10·26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내란목적살인’과 ‘내란미수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중정은 전두환 정권 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바뀌었다. 안기부는 12·12 쿠데타 주역인 하나회 소속 장성들을 수장으로 임명했으나,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 줄줄이 구속됐다. 안기부 11대, 13대, 14대 부장 등이 군사반란과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됐다. 김영삼 정권 때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씨 역시 선거운동과 불법대선자금 모금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지금의 국가정보원은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들어섰다. 중정과 안기부처럼 '정권의 하녀'가 아닌 순전한 정보수집 목적의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담고 출범했다. 국정원 원훈인 ‘정보는 국력이다’ 역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썼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의 초대 원장이었던 임동원 원장과 신건 원장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법의 심판을 받았다. 임 원장은 당시 ‘햇볕정책’을 총지휘하며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첫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에는 국정원 불법 도청사건으로 구속됐다. 신건 전 원장도 정치인과 주요 언론인 불법 도청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김만복 전 원장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45년만에 배출된 공채 출신 첫 원장이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 자리에 배석했고, 그해 12월 방북해 김양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대화록을 언론에 공개했다가 2008년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2010년 10월 자서전에서 10·4 남북정상회담 일화를 공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2011년 국정원으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은 줄줄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기 국정원장을 지낸 5명 중 현재 김성호 전 원장을 제외한 3명이 구속됐다. 이명박 정권의 원세훈 원장은 정치 개입 혐의로 앞서 구속됐고,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 3명 가운데 남재준, 이병기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으로 대통령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정원이 국가보다 권력자 개인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이런 흑역사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보수집기관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없고, 집권자 성향에 맞춰 과잉충성을 하다 보니 집권자가 물러간 뒤에는 반드시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불법적인 행동들이 드러나는 것"이라며 "국정원장 잔혹사를 끝내려면 국정원이 정치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