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률은 제3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이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진흥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22조에는 '보행자길에서 차마를 운전하는 사람은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을 방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요약하면 길에서는 사람이 무엇보다 우선이란 것이다.
이런 노력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가릴 것 없이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2012년 4월 '보도블록 10계명' 발표를 시작으로 그 다음해 '보행친화도시 선언', 2014년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에 이어 지난해 1월 '걷는 도시, 서울'이란 타이틀의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일련의 정책은 가장 평등한 이동수단인 보행을 통해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리는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게 취지이자 지향점이다.
이 같은 시도는 해외에서 먼저 활발히 진행됐다. 스페인의 폰테베드라는 15년에 걸쳐 혁신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간단히 말해, 도심으로의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주차장을 외곽에 옮겨 무료로 사용토록 했다. 시가지에는 지하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도 없이 오로지 걷는 사람들로 채웠다. 그러자 점차 골목상권이 살아났고, 아이들은 맘대로 뛰어놀며 활력이 넘쳤다.
미국 뉴역의 브로드웨이는 차로 수 축소, 보행 플라자 추가 설치, 자전거도로 위치 조정 등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경제활동 규모 22% 증가, 보행자 사고 35% 감소란 의미 있는 효과를 거뒀다. 영국 런던의 경우 혼잡통행료 징수라는 특단의 대책으로 도심에서 자동차를 줄였다. 프랑스 파리는 과거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샹젤리제 보행전용거리를 뒀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중앙·지방정부의 정책과는 아직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여전히 곳곳의 이면도로는 차량이 점령했고, 최근 들어 자전거도로에 보행공간을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기준 서울의 중심 한양도성 내 보행자 교통사고는 217건이 발생했고, 승용차가 하루 평균 4만대가량 유입되고 있다. 단순 지표로 봤을 때도 나아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앞에서 언급한 보행자길의 모든 도로들이 '도로교통법' 적용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이 법률에선 보도 또는 길 가장자리 구역을 제외하고 도로는 모두 차마의 영역으로 명시했다. 다시 말해 보행자는 차량통행의 방해물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일상에서 국민들은 최소 하루에 한 차례는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며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의 연장선에서 전문가들은 '보행자우선도로'의 법적 위상이 미흡해 새로운 가로(街路) 개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리하면, 보행자 위에 놓인 자동차 위주의 법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보행자우선도로의 법적 효력과 위상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해당 구간에서 보행자의 통행우선권이 부여되고, 현행 규칙이 아닌 법률에서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Rousseau)는 "도심에서의 보행은 단순히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이라는 결과적 행위가 아니라 자유의 경험, 관찰과 상상의 원천, 행복을 즐기는 행위다"란 말을 남겼다. 보행자의 안전은 언제, 어디서든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보행자의 권익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