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동북아시아 분단된 한반도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국제문제를 볼 때 남북한 상황과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이유다.
비록 현재 해외여행이 편리한 한국의 입장에서 세계 어느 곳을 가는 것도 불편하진 않지만,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정치와 국제 기사 내용 대부분은 한국과 한반도 주변 상황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새 정부의 신(新) 북방정책은 남북한 문제, 국가 안보 및 경제와 연결돼 우리에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동북아가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런데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와 중국, 그리고 남태평양 국가들의 뉴스를 보면 동남아 지역의 모든 사건은 항상 신문 메인을 장식하는 기사의 한 부분이다. 미국과 유럽의 동아시아 연구에서도 동남아에 대한 연구가 동북아보다 많고, 동북아는 한국·일본·몽골 등 국가별 연구나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 국제관계 연구로 따로 분류된다.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대서양과 인도양을 가로지르며 식민지를 개척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시아 지역 진출은 서남아시아를 거치고 동남아시아를 지나서 중국의 남단에 상륙하거나 대만을 거쳐 동북지역으로 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중국이 제창하는 해양 실크로드 역시 중국의 남단인 남태평양과 인도양을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듯, 서구의 산업화 힘은 인도양과 남태평양을 거쳐 아시아와 중국에 상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남단은 동남아 국가들과 가까이 연결돼 있어 명(明)·청(淸)시대 중국인들도 환난(患難)이나 기황(饑荒)을 피해 동남아에 진출했다.
‘쿠리(coolie, 苦力)’라 불리던 노동자가 육체노동을 하던 인도인이나 중국인이었다는 것을 봐도 서남아와 동남아가 서구의 식민 산업자본과 연결돼 서로 이어지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남단의 광둥(廣東)성과 푸젠(福建)성 마을 대부분이 화교의 본향이고, 영국연방이었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에는 아직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중국은 동남아 국가와 이처럼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유구한 관계로 얽혀있기에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관심의 끈을 놓지않으며 꾸준히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분단된 대만도 마찬가지다.
근대 식민지를 개척하던 유럽 국가들은 동남아 국가들, 중국 남단에 있는 광둥성의 광저우(廣州), 홍콩, 마카오 등과 서남부의 대만을 식민통치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즉, 동남아 국가와 중국의 남단은 서구인들이 해양을 통해 처음 접하는 아시아가 됐다. 이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 지역이라 말하는 곳은 당연히 동남아 국가와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이 식민통치를 위해 인재를 배양하던 소아즈대학(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연구가 아직 지속되고 있다. 즉, 식민지 쟁탈을 위한 서구 자본주의의 아시아 진출은 동남아와 중국의 남단을 식민지화하면서 아시아와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이 해양에서 무력을 사용해 육지로 진출하는 직접적 동·서의 교류가 됐다.
대만은 스페인, 포르투갈의 세력이 지나간 곳이자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아왔던 곳으로,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 이후 만 49년간 일본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그래서 이곳은 지리적 특성으로 동남아 국가와 비슷한 문화와 일본·중국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일부 인종에는 대만 원주민이라는 동남아 계열 민족 및 네덜란드 사람들의 후예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에게서 '대만 내성인(內省人, 명청시대 대만으로 이전한 한족)'이라는 객가(客家, Hakka) 민족과 대만 원주민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동아시아 민족의 융합을 얘기한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섬이라 불리는 포르모사(Formosa)의 중남부 자이(嘉義)에는 북회귀선이 통과한다. 그래서 대만을 동북아에 넣기도 하고 동남아에 넣기도 한다.
푸젠성의 문화는 광둥성까지 연결되어 있다. 중국 남방 문화가 동남아 문화, 그리고 육지와 해양으로 연결되고 있다. 많은 동남아 화교들의 고향은 푸젠성, 광둥성이고 이 중에는 객가족이 많다.
과거 일본은 이 지역을 점령하고 나서 여기에 동남아 각 국가의 인문·지리·정치·경제·민족 등의 연구소를 만들어 동남아 침략과 통치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일본 패전 이후 이 자료들은 현재 대만 중앙도서관에 잘 보관돼 있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였던 대만과의 연계를 통해 일찍이 동남아 지역에 관심을 가졌다. 현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해 동남아 국가들과 유대를 돈독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일본과 동남아, 미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관계는 제1,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에도 꾸준한 핵심 이슈를 두고 대립해 오고 있다. 구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이곳에서의 대립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으로 지역과 사회 통합을 외치고 사회와 국가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과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제20차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에서 사회 통합과 개방을 통한 발전적 공동체를 주장하면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선도적인 외교와 협력적 발전의 모토를 제시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근대에 식민지로 전락했던 경험이 있고 내란의 아픔도 겪었으며, 최종 독립을 획득했다. 이 국가들은 현재 경제적 발전을 통해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을 함께 이루려는 아시아 민족의 꿈을 갖고 있다.
여러 인종과 종교가 혼재하는 동남아 지역은 사회와 지역 간 통합을 통해 정의롭고 공평하고 함께 잘 사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신남방정책은 우리가 동북아에 있지만, 동아시아적 입장에서 동남아 민족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함께 발전하겠다는 꿈과 희망을 그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사람이 우선인 아시아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이나 홍콩에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동남아시아 역사와 화교사에 대해 반드시 배우게 된다. 중국 중앙 왕조의 역사와 근현대사를 공부함과 동시에 동남아시아를 필수로 배워야 하는 것은 오랜 기간 중국에 경제·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곳이 동남아 지역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홍콩·마카오 역사는 물론 근대 아편전쟁을 기초로 한 동·서 교류의 역사도 필수로 배워야 한다. 필자는 오래전 이러한 공부를 한 적도 있는데, 중국은 ‘동·서 교류’에서 ‘동’이라는 것을 중국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동아시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경험과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가 있고, 다양한 문화와 민족의 특이성이 존재한다. 문 대통령이 주장한 신남방정책은 그들의 개별 가치관을 인정하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적 가치를 기초로 배려와 협력을 통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국제관계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역사적 아픔도 있고 현실적 과제도 있다. 그들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월남의 레이(李)왕조의 후예가 한국에 와서 정착해 한국인이 되었고, 조선말 한국의 화교 상인 중에서 가장 사업을 크게 하던 광둥상인이었으며, 우리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를 거쳐 필리핀에 가서 수학한 것을 생각하면 한국과 중국 남부 및 동남아는 역사적 인연(因緣)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 한국의 해외건설 시작도 동남아 지역이었고, 우리가 해외 참전한 곳도 이 지역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사람이 우선인 정책’을 평등하게 추진해 ‘함께 번영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우리 국민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