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재설계]‘넘버원 코리아’ 비전의 그 코끼리는 왜 춤을 멈췄나

2017-11-0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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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실적의 민낯···2020 비전을 재설계하라

도전·개척의 ‘기업가 문화’ 후퇴···변칙복서 같은 무원칙에 매몰

젊은피 수혈한 조직개편···행동 이끌어낼 정신부터 새롭게 해야

[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고통이 싫다면 유일한 해답은 그 고통을 경쟁자의 등으로 옮기는 겁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시장을 잠식해 온 사람들이고 여러분의 자산을 빼앗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자녀와 손주들을 대학에 보내기 어렵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해답은 고통을 그들에게로 옮기고 IBM을 성공의 세계로 복귀시키는 겁니다.”

1990년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IT 공룡’ IBM 최고경영자(CEO)에 부임한 루이스 V. 거스너 Jr. 전 IBM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이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거스너 전 회장은 자신의 저서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에서 “IBM의 재건은 모두 실행에 달려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 그리고 IMB이 필요로 하는 것은 - 지금이 위기존망의 시기라는 자각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발언의 이유를 설명했다.

거스너 전 부회장은 말은 2020년을 앞둔 우리 기업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와닿는다. 국내 기업들은 코끼리들이 개미떼를 이길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코끼리가 춤을 출 수 있느냐는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코끼리가 춤을 출 수 있다면 개미 때는 무대를 떠나야 한다. ‘춤추는 코끼리’가 되지 않고서는 새로운 10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 그룹들은 ‘비전 2020’의 성과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10년을 위한 ‘비전 2030’ 마련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젊은 피 경영인들의 대거 등용과 조직개편은 시작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지고 이를 활용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업구조 개편’은 앞으로 해내야 할 몫이다.

재계 관계자는 5일 “국내 기업들은 각 분야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글로벌 1위 등극을 위한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우위를 잡지는 못한 분야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뒤처져 있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 속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전진을 지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핵심분야 세계 1위' 등 화려했던 '비전 2020'··· 저성장 기조 등에 발목
2010년대 초반 대다수 그룹들은 △신성장동력 안착 △핵심분야 세계 1위 △브랜드가치 극대화를 골자로 하는 ‘비전 2020’을 제시하고 화려한 성장을 꿈꿨다.

삼성그룹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하고 신사업을 통해 새로운 퀀텀점프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매출 4000억 달러 달성, IT업계 압도적 1등, 글로벌 10대 기업 도약, 브랜드가치 톱5, 존경 받는 기업 톱10, 친환경기업 선두그룹 진입 등을 제시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자동차-철강-건설을 3대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글로벌 종합엔지니어링 그룹’으로의 도약을 추진했다.

LG그룹은 2020년의 지향점을 ‘일등LG’로 제시했고, SK그룹과 포스코그룹은 매출 200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GS그룹은 핵심요소형 사업 선점, LS그룹은 그린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가시적인 성과와 더불어 글로벌 기업을 지향했다.

한화그룹은 핵심사업 분야에서 1등을 강조하면서 2020년 매출 140조원과 영업이익 12조원 달성을, 두산그룹은 2020년 글로벌 200대 기업으로의 도약을 강조했다.

 ‘비전 2020’은 2000년대 세계경기 초호황을 바탕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 경제와 산업 경쟁력의 자신감도 반영됐다.

하지만 출발부터 발목을 잡혔다. 2010년대 들어 선진국은 물론 우리 기업들의 주력시장으로 부상하던 개발도상국까지 저성장의 늪에 빠져 들었다. 우리 기업들이 북미·유럽·일본 기업으로부터 빼앗았던 시장은 중국 기업들에 빠르게 갉아먹혔다.
여기에 내수경기 침체와 ‘반기업 정서’까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잔뜩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삼성, 세계 1위 등극 등 의미있는 성과도··· "아직 샴페인 터뜨릴 때 아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내 대기업들은 2020년대를 앞두고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2개 분기 연속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삼성전자는 올해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 기준으로 처음으로 미국 인텔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기업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인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 참여해 새 주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모그룹의 확실한 지원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한편, SK그룹의 3대 사업군의 한 축으로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성장 둔화, 조선산업의 외형 축소 등 국가 주력산업이 위축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적극적인 도전과 개척을 앞세운 기업가 문화가 후퇴하고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재계 관계자는 “비상한 머리에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로 가득한 대기업이지만 노력을 바탕으로 한 작은 성공의 축적보다는 한탕주의식 과감한 성공의 비법만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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