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가난과 무엇이 다르랴!(何異丐者貧, 하이개자빈)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돈을 쌓아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수전노(守錢奴)라 부른다. 수전노와 거지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돈을 못 쓴다는 것이다. 수전노는 돈이 많아도 못 쓰고, 거지는 돈이 없어서 못 쓴다.
돈 전(錢), 지킬 수(守), 노예 노(奴). 말 그대로, 돈을 지키는 노예가 수전노이다. 말을 풀어서 보니, 집 지키는 강아지와 같다고나 할까? 목줄에 묶인 채 집을 지키는 강아지처럼,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돈줄에 얽매여 사는 게 수전노이다.
돈의 주인이면서 도리어 돈에 구속당하는 이런 모순적(矛盾的)인 삶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돈을 벌어도 벌어도 여전히 돈에 목이 마른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연봉이며 아파트값에 사람의 크기가 정해지는 현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아파트 크기로 친구와 비교하는 씁쓸한 현실의 우리는 과연 돈에서 자유로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큰 집, 비싼 집을 살 형편은 못 되고 우리 아이도 그런 이유로 제 크기를 제 스스로 줄이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집, 더 비싼 집을 갈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무리하게 집을 사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기도 한다. 거금을 들여 비싼 집을 사서 소유하고 있음에도 쓸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다. 수전노와 처지가 다를 게 없다. 값비싼 집을 소유하고 있어도 쓸 수 있는 돈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