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국정감사가 ‘맹탕·재탕·허탕’에 그쳤다. 입법부의 대행정부 감시는 온데간데없이 ‘적폐 청산 대 신(新) 적폐 청산’이란 과거 프레임에 빠진 데다, 여야 모두 결정적 한 방 없이 난타전만 벌인 결과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국감 보이콧은 선언, 사상 최악의 국감이란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해묵은 과제인 효율적인 행정 통제를 위한 상시 국감 등 제도적 개선 마련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회는 31일 상임위원회 13곳을 마지막으로 올해 국감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남은 국감은 다음 달 6일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를 대상으로 하는 국회 운영위이다.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논란으로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여야 간 난타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인사 검증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운영위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져 부실 국감 책임론도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실 국감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부활한 국감은 매년 20일간 입법부의 견제 기능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 역할을 했다. 독재정권의 그림자가 남았던 행정부 우위 시절 땐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행정부 우위에 금이 가면서 국감장은 ‘포스트 정국’의 주도권 쟁탈전으로 전락했다.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 이명박(MB)’ 프레임이 올해 국감 한가운데를 관통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감의 구조적 한계도 ‘제도 무용론’에 한몫한다. 20일간의 한정된 기간은 ‘몰아치기 국감’으로 이어졌고 여야 의원의 ‘호통치기’, ‘고성·막말’, ‘묻지마 식 폭로’, ‘과도한 자료 요구’ 등이 도돌이표처럼 재연됐다. ‘소나기만 피하자’는 피감기관의 형식적 답변과 불성실한 자료 제출도 여전했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올해 국감은 역대 어느 국감보다도 싸우는 국감이 됐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낙제점인 F 학점을 면치 못할 것 같다”며 “야당인 한국당이 방송 장악 의혹을 고리로 국감 전체를 보이콧한 것은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상시국감 체제 절실…美 GAO 검토 필요
문제는 대안이다. 제도적으로는 상시 국감 체제가 꼽힌다. 우리의 경우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국감 실시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은 별도의 규정이 없다. 입법부의 대행정부 감시는 명문 규정 없이 일상화된 권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의회 상임위에 통상적인 감사권, 조사위에 국정조사에 해당하는 조사권을 부여하고 연중 견제 기능을 살린다.
일각에서는 ‘1년 내내 정쟁 국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국회 한 관계자는 “상임위별로 감사 시기를 조정하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감사원과의 협력체제 구축도 중요하다. 국회법 제172조의 2는 국회의 감사원 감사 요구권을 명시했다. 국회는 특정 사안에 관해 감사를 요구하고 감사원은 이를 국회에 보고하는 상시 체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개헌을 통해 입법부의 비(非) 회계감사와 감사원의 회계검사·직무감찰의 이원화된 구조를 깨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일종의 미국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의 도입이다.
이 밖에도 △정책 국감을 위한 사후 점검 기능 강화 △전문가·시민단체·국민 등이 포함된 외부 기구 설립 등도 대안으로 꼽힌다. 최 교수는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 개개인의 인식 제고도 절실하다”며 “제도 만능주의에 빠지면 1년 내내 정쟁 국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