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 칼럼] 고속열차는 녹슨 기찻길로 달릴 수 없다

2017-10-30 06:00
  • 글자크기 설정

[사진=윤영걸 초빙논설위원]


11년 만에 복귀하는 가수 나훈아의 콘서트 티켓 예매가 불과 12분 만에 매진(3만1500석)됐다. 암표상까지 등장한 콘서트의 주요 고객은 30대인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그들의 부모세대인 60~70대를 위한 효도구매란다.

나훈아의 인기 비결은 빼어난 음악성과 함께 시대적 코드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1966년 ‘천리길’이란 노래로 데뷔한 그는 개발시대 농촌을 등진 서민들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 ‘고향역’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 노동자들을 “고향에 가면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 역을 볼 수 있고, 이뿐이 꽃분이가 반겨줄 것”이라는 메시지로 위로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세대의 시린 가슴은 그의 노래에서 공감과 치유를 느꼈다.
추억은 아름답다. 그러나 우린 언제부터인가 미래보다 과거 지향적으로 변했다. 흘러간 세대의 끝없는 자리 욕심이 이를 부채질한다. 임기가 남은 무역협회장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유력하게 거론되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79)은 행정고시 합격 후 43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장관급 고위직만 12년을 수행한 인물이다. 차기 전국은행연합회장 하마평에 오르는 홍재형 전 부총리(80)와 김창록 전 산업은행장(69)은 언제적 인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유한국당 8선 의원인 서청원 의원(75)이 자진탈당을 요구하는 홍준표 대표와 벌이는 이전투구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국정농단 이후 내내 입을 다물다가 자신의 거취문제가 떠오르자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상기된 얼굴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치원로 맞나 싶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책에서 70세가 넘어서면 선출직이나 공직에 오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건강해도 그 나이가 되면 갑자기 병이 들거나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성격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소노의 ‘70세 불가론’은 나이 들었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정년 이후에는 책임이 큰 자리 대신 보람 있는 일을 통해 새 출발을 하라는 얘기다.

교통부 장관을 지낸 손수익씨(86)는 1994년 은퇴 후 고향으로 내려가 장흥학당을 세웠다. 그동안 500여회의 연찬회를 가진 장흥학당은 국내 최초의 지역사회 학습공동체 모델로 꼽히며 가장 아름다운 강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장흥학당 운영비는 장관 할아버지의 쌈짓돈에서 출발했다. 전남 장흥이 아름다운 것은 비단 풍광뿐 아니라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을 빛낸 인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은퇴 후 고향에서 봉사할 생각보다는 서울에 눌러 앉아서 한 자리를 노리고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로펌이나 대기업의 고문 사외이사를 노린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뻔하다. 전관예우를 활용해 현직 후배에게 이권청탁과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재벌회장이 마음 놓고 회삿돈을 빼돌리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배경에는 전직 고위관리들의 바람막이 역할이 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감투에 연연하며 구구하게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고향이 자신의 든든한 방어막이다. 초등학교 때 서울 올라온 사람이 평생 고향을 우려 먹기도 한다. 자신이 불리하면 지역차별을 내세운다. 이들이 고향을 위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가 묻고 싶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 김해로 낙향한 것은 귀감이 되는 선택이었다.

원로들에게 자리 몇 개 나눠 준다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나이차별은 남녀차별 못지않은 죄악이다. 오히려 그들의 폭넓은 경륜을 활용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원로에 대한 단순한 배려용 낙하산 인사가 우리 사회의 활력을 좀먹는 엄청난 사회악이라는 데 있다. 꼭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면 낙하산에 의존하지 말고,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당하게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이 선진국의 길목에서 좌절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꽉 막혀버린 세대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구세대가 사회개혁을 틀어막고 있다. 산업화세력은 굴뚝 산업 시대의 정책마인드에 매몰됐고, 운동권 출신인 민주화 세력은 민중적 명분을 독식한 채 특권집단화한 지 오래다. 라가르드 IMF 총재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간담회를 한 뒤 미래의 꿈과 희망이 없는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한국의 현실을 ‘집단자살사회’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어찌 젊은 여성들만의 문제일까. 젊은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창 일해야 하는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은 ‘집단자살 사회’가 아니라 명백히 ‘사회적 타살사회’다.

이제 개발시대는 끝이 났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두뇌를 요구한다. 지금 한국은 무엇보다 열정과 역동성이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 청년실업문제는 공무원 숫자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젊은 신생기업이 많이 일어나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공기업의 주요 직책부터 젊은 세대를 과감히 앉혀야 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언제나 미래다. 세대교체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자연스러운 일이고, 삶의 일부다.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개인의 인생이 풍요해지려면 기득권 세대가 소리 없이 의자를 내주고 물러나야 한다.

올해 달력이 겨우 2장 남았다. 무엇을 물려주고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는 11월을 맞으면 어떨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멋진 사람이다. 나훈아 노래 ‘녹슬은 기찻길’에는 고속열차가 달릴 수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