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본사 초빙논설위원 · 전 매경닷컴대표)
깊이 있는 신학이론과 깔끔한 강론으로 인기가 높은 어느 신부가 신학원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중환자에게 두 명의 의사가 있다. 한 명은 인격이나 도덕성에서 흠 잡을 때가 없는데 수술 실력에서는 좀 문제가 있다. 다른 한 명은 도덕성에 흠이 있지만 수술 실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러분이 환자라면 어떤 의사한테 수술을 받고 싶으세요?” “두 번째 의사한테요!” 거의 함성수준의 답변이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났다고 그 신부는 말했다.
‘세종 같은 임금에 황희 같은 정승’이란 말이 있다. 조선 최고의 대신으로 불리는 황희(1363~1452)는 90세까지 살면서 24년간 정승자리에 있었고, 이 중 19년을 영의정으로 살았다. 사실 그는 청백리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뇌물수수와 관직알선, 직권남용 혐의로 단골 ‘탄핵대상’이었다. 지방 수령의 아들이 중앙의 벼슬자리를 부탁하자 황희는 대신 땅을 바칠 것을 요구한 혐의로 벼슬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황희의 사위 서달이 관아의 아전을 몽둥이로 때려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우의정인 맹사성과 함께 살인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파직되기도 했다. 심지어 간통혐의까지 받았다. 황희가 숱한 비리와 직권남용 혐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국가 CEO인 세종의 적극적인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종이 필요했던 것은 황희의 도덕성이 아니라 탁월한 정치력이었다. 세종은 황희가 수신제가(修身齊家)에는 일부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에는 그만한 인물이 없다고 보고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도 무작정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때 총리 후보자 아들의 30년 전 병역면제 등을 문제 삼아 쫓아냈다. 장관들 청문회에선 자녀 이중국적, 과거 관행이었던 다운계약서 등을 지적하며 “도덕성 없는 정권”이라고 매도했다. 반대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사소한 이유로 고위공직자 후보를 낙마시키고 쾌재를 부르던 정당이 지금의 야당이다. 한국의 청문회는 정권교체 때마다 이뤄지는 한풀이에 가깝다. 여야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는 황금률(Golden rule)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고위공직자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을 함부로 완화하자는 게 아니다. 과거의 일을 지금의 잣대로 지나치게 발가벗겨 매도하지 말자는 거다. 이 나라를 이끌 고위공직자가 취임도 하기 전에 누더기 신세가 되는 것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쯤에서 대통령은 결단을 해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내세우지 말고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금까지 부도덕하다고 매도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에 대해 정신적 사면과 함께 심심한 사죄를 해야 한다. 장관 후보자에게 다소 도덕적인 흠이 있더라도 양해해줄 것을 간청해야 한다. 야당은 대국적인 차원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내미는 손을 잡아줘야 한다. 문 대통령의 개혁 조치는 대부분 국회 입법을 통해 완성되는 것들이다. 인사난맥으로 정권 초기부터 국정운용의 실타래가 꼬이기 시작하면 국가적인 불행이다.
깨끗하지만 무능한 사람을 뽑을 것인가, 처신에 다소 하자가 있더라도 유능한 사람을 뽑을 것인가. 물론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이 선택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좀처럼 흔치 않으니 문제다. 도덕적인 기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업무능력과 국가비전에 대한 안목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몇 달 동안 충분히 사전검증을 한 뒤 공개청문회에서는 정책 검증에 주력하는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할 때가 됐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직무에 필요한 능력과 최소한의 직업윤리이다. 지나치지 않은 허물은 넘어가 주는 것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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