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지난 19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첫날 1라운드에서 일어났다. 일부 홀의 그린과 그린 주변 지역(프린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그린과 프린지의 잔디 길이는 10㎜ 이상 차이가 나도록 돼 있다. 확실한 구분을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 홀에서 그린과 프린지의 차이가 1㎜도 채 되지 않아 일부 선수들은 프린지 지역을 그린으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진 것. 이렇다보니 프린지를 그린으로 착각해 마크를 하고 공을 집어 드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골프 규칙에 의하면 그린이 아닌 곳에서 공을 집어 들면 1벌타를 받는다.
최혜진(19)은 13번 홀에서 프린지 위의 공을 집어 들었다가 경기위원에게 벌타를 받았고, 앞서 10번 홀에서도 벌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뒤늦게 확인됐다. 박인비(29)와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도 애매한 상황에 항의가 잇따랐다.
하지만 또 선수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벌타 면책은 공정성에 있어서 부당한 처사라며 대회 이튿날인 20일 2라운드 시작을 거부했다. 집단 보이콧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KLPGA 투어는 “대회 1라운드를 취소하고 3라운드 대회로 축소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결과, 프린지에 대한 상이한 규칙 적용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선수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1라운드를 취소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악천후가 아닌 선수들의 집단 반발로 대회 1라운드가 취소되고 54홀로 축소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잘못을 인정한 KLPGA는 “선수와 골프팬, 대회를 개최한 스폰서 등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최진하 KLPGA 경기위원장은 미숙한 행정의 책임을 지고 사무국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선수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1라운드에서 벌타 논란 없이 공동 선두에 올랐던 하민송과 홀인원을 기록한 김규리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홀인원 부상은 고급 안마의자였다. 또 2라운드 종료 후 열릴 예정이었던 박인비의 KLPGA 명예의 전당 가입 기념행사도 미뤄졌다.
국제적인 망신도 피할 수 없었다. 골프채널은 “메이저 대회에서의 규정 논란으로 경기위원장이 사퇴했다”며 이번 사태를 자세히 다뤘고, 골프닷컴도 “프로 골프 대회에서 논란이 종종 있지만, KLPGA 투어에서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프린지와 그린의 경계가 애매모호해 1라운드 결과가 무효 처리됐다”고 전했다. 또 골프위크는 “올해 에비앙 챔피언십이 악천후로 54홀 대회로 축소된 적이 있다. KLPGA 투어에서도 메이저 대회가 3라운드로 열리게 됐다. 다만 날씨 때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운 경기위원회의 미숙한 행정 탓에 상처만 남은 대회는 뒤늦게 다시 시작해 절반 가까운 선수들이 1라운드를 마치지 못했다. 취소된 1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로 공동 17위를 기록했던 김해림(28)은 새로운 1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로 단독 선두에 오르는 행운을 누렸다. 21일 현재 1라운드 잔여 경기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