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 “도시는 잠시 빌려쓰는 공공재"

2017-10-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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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명의 사람 만개의 입장, 공론화로 풀어야"

서울 중구 서울시 신청사에서 만난 김영준 서울시총괄건축가가 도시의 공공적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도시 문제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같습니다. 얼굴을 만지는 사람, 뒷다리를 만지는 사람. 모두 내가 사는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거죠.”

1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만난 김영준 총괄건축가는 무엇보다 도시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제1대 서울시 총괄건축가인 승효상 건축가의 후임으로 위촉된 김영준 건축가는 ‘김영준 도시건축’의 대표로 서울의 도시·건축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 전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만큼 총괄건축가의 역할은 현재 재개발·도시재생 등 시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도입해 올해로 3년 째를 맞는 총괄건축가 제도는 스페인·독일·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다. 서울시의 총괄건축가는 시의 공간정책에 대한 자문에 응하거나 주요 건축사업을 조정하는 전문가다.

◆“총괄 건축가는 변화의 간극 메우는 사람”

김 건축가는 자신의 역할을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미 ‘팽창의 시대’를 끝내고 ‘성장하지 않는 시대’에 돌입했다. 그 변화하는 사이에서 발생한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 그의 임무라는 설명이다.

김 건축가는 “서울시는 크게 두 번의 변화를 겪었다. 일제 강점기 때와 1960~1970년대 경제 개발 때다. 그 이후 서울은 빠르게 팽창해왔다”며 “팽창의 시대에 대비하다 보니 똑같은 아파트와 다리를 반복해서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서울도 인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시기에 진입한 만큼 팽창의 시기에 만들었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건축가는 “더 이상 서울은 팽창하지 않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시대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제도도 사람도 ‘건설의 시대’에서 ‘건축의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변을 따라가는 도로와 시내 중심부를 따라가는 도로는 달라야 한다”며 “아파트도 서울에 들어서는 아파트와 신도시에 들어서는 아파트, 지방에 들어서는 아파트는 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하는 일도 중간 영역에서 의견을 조정하는 일이다. 김 건축가는 “‘서울로 7017’은 건축인지 도로인지 공원인지 확실하지 않은 중간 영역에 속한다”며 “하지만 어떤 영역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아가는데 살기 좋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로 7017 사업을 조경 쪽 부서에서 진행했을 때와 건축 쪽 부서에서 진행했을 때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기존 행정 조직으로는 이를 완성하기 힘들다. 정책적인 변화를 넘어 도시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이 총괄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시대가 변화하는 동안 발생한 틈을 메우는 것이 총괄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현 시대에서 부술 것과 남길 것 판단해야”

전면 철거 중심의 개발 사업보다는 재생 위주의 정비 사업을 중시했던 승효상 건축가에 이어 김 건축가도 기존 서울시의 도시 정책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김 건축가는 “안정의 시대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게 됐다”며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철거 뒤 도시에 남은 30~40년의 내 추억들이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 건축가는 도시를 기억과 추억의 집합체라고 말한다. 그는 “팽창의 시대 때는 도시의 룰이 ‘부수고 새로 짓는 것’ 하나였지만, 이제 시민들은 부술 것과 남길 것을 판단하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산 근처에 집을 만들 때와 강 근처에 집을 만들 때 다 다른 판단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현재 재건축·재개발 지역과 서울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갈등은 ‘층수 규제’다. 특히 일부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35층으로 높이를 규제한 ‘서울시의 2030 플랜’을 두고 박원순 시장과 조합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김 건축가 역시 도시의 모든 환경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물론 소유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시 공간에 대한 모든 것은 당분간 빌려쓰는 공공재”라며 “그 동안 자본이 풍요롭지 않던 우리나라는 임대아파트와 공원 등 공공이 만들어야 할 것을 민간에게 맡겨서 하다 보니 개인과 공공 사이에 ‘공공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 건축가는 “50층 아파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전경은 멋있겠지만, 밖에서 한강 옆에 지어진 아파트를 보는 것은 다르다”며 “도시에서의 삶은 프라이버시를 강화시킬수록 더 살기 힘든 공간이 된다. 같이 사는 도시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시를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닌 함께 사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재건축 단지들에 대한 김 대표의 부탁이다. 그는 “재개발·재건축 지역도 예전에는 다 같이 살던 곳이었는데 각자 뜯어내고 고치다보니 단지마다 따로 놀게 됐다”며 “지금부터라도 기존의 생각을 깨고 공공성을 중시한 정책을 계속 끌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제는 절반을 완성해야 할 때”

박 시장의 임기 4년 가운데 전반부 2년간 승효상 건축가가 밑그림을 그렸다면 후반부 2년 동안 그림에 색을 칠하는 것이 김 건축가가 할 일이다.

김 건축가는 “마포 석유비축기지, 종로 세운상가, 서울로 7017까지 모두 계획했던 것이 하나하나 완성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마무리 외에도 인구 부족과 관광객 문제, 환경 문제 등과 관련해 도시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몇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베니스와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일부 유럽 도시에선 관광객을 거부하는 지역도 발생하고 있다”며 “맞닥뜨리는 시기만 다를 뿐 서울만이 아니라 전세계 도시들이 노인 인구 증가, 이민자 유입 등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건축가는 이번에 처음으로 열리는 ‘2017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가 도시 문제의 답을 찾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한강 인근을 개발하려면 영국에 가서 템스강을 보고 따라하는 게 전부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필요한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가 다르다. 여러 도시들을 한 자리에 모아 도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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