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정권의 ‘청와대 캐비닛 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난 7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내 캐비닛에서 전 정권의 각종 문건을 대량 발견함으로써 촉발된 '문건 수색작전’에 이은 2차 혈전(血戰)이다.
핵심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작’ 의혹이다. 청와대는 이를 ‘대통령훈령 불법조작 사건’을 규정하고 대검찰청 반부패부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이번 주 초 허위 공문서 작성(보고일지 사후 조작)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무단 수정) 혐의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다.
◆朴부터 김관진·김기춘 前정권 타깃···檢수사 본격화
15일 정치권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월호 문건 사후조작 의혹은 국정농단의 최정점에 선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문건 조작을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와대 김관진·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법적·정치적 책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청와대가 공개한 문건의 쟁점은 △2014년 4월16일 첫 보고시간 수정(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변경)에 따른 보고시점과 첫 지시(오전 10시15분)의 간격 줄이기 △넓은 의미의 법인 ‘훈령’의 법적 절차를 무시한 조작 의혹 등이다.
이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은 ‘7시간 반’이 된다. 대통령의 최초 보고 시점이 적시된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 조작했다면, 형법상 허위 공문서 행사, 모해위조증거사용 등에 해당한다. 그간 국회에 출석해 사후 조작을 주장했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은 위증죄 논란에 휩싸인다. 문건 사후조작을 지시한 ‘윗선의 규명’이 파장의 변곡점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청와대가 공개한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 등은 ‘생산이 완성되지 않은’ 문서였던 반면, 이번의 상황일지나 국가위기관리 기본 지침 등은 공공기록물에 가깝다. 이를 조작했다면,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 조작 의혹을 받는 상황일지 등은 헌법재판소에 그대로 제출됐다.
◆公문서에 ‘빨간줄’ 미스터리···적폐청산 vs 국감 보이콧
다만 윗선 말고 이를 실행한 실무선도 동시에 처벌하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청와대가 공개한 이번 문서를 보면, “국가안보실장은 안정적 위기관리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적힌 대목에 빨간 볼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다.
통상적인 공문서, 특히 청와대 문서는 파일 형태로 저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각에선 윗선의 지시에 항명할 수 없는 실무자가 향후 법적 문제를 피하려고 일종의 ‘묘수’를 꾀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 경우 실무자는 법적 처벌을 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청와대 캐비닛 문건 공개 파문은 미스터리 투성이”라며 “박 전 대통령부터 김관진·김기춘 전 실장 등도 직접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4·16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가족협의회와의 간담회를 열고 진상 규명에 박차를 가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2기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을 촉구하는 만큼, 민주당과 연대전선을 통해 보수 야당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같은 날 국회에서 신 적폐저지특위 회의를 열고 맞불 작전에 나섰다. 한국당은 같은 날 국회에서 신 적폐저지특위회의를 열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또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전 정권 문건 공개를 ‘국정감사 방해 전략’으로 규정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청와대가 정치적 의도에 맞는 문건만 편집, 취사선택해서 공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주 국감은 세월호 문건 조작 등 신구 정권의 충돌 등으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법제사법위, 행정안전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등에서 파행을 겪었다. 이번 주 국감도 정상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감 첫주 한국당의 선택적 보이콧은 명분도 실익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여의도를 덮친 신구 정권의 캐비닛 문건 파장은 이번 주 최대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